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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 인터넷 공개’도 쏙 뺀 청목회 면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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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

#1. 지난해 11월 백원우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이 한 법안을 발의했다.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일부 허용하되 “6개월에 60만원을 초과해 기부한 후원인의 기부내역(성명·직장명·직위·기부금액·기부일자)을 6개월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가급적 소액 다수의 후원금을 투명하게 받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자금을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로비 사건’처럼 검찰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감시하게 된다. 돈을 받는 정치인도 떳떳해지고 자금을 모으는 길도 투명해진다.

 #2. 3월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야는 전원 합의로 한 법안을 기습 통과시켰다. 법인·단체의 공금이 아닌 돈의 기부를 허용하고, 국회의원 입법행위 등과 관련된 청탁은 대가성을 따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 두 법안의 이름은 똑같다.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하지만 두 법안엔 큰 차이점이 있다. 4일 행안위를 통과한 법안엔 돈을 모으는 방법만 ‘합법화’했을 뿐 지난해 11월에 논의했던 ‘정치자금 투명화 방안’이 슬며시 빠졌다. 후원금의 인터넷 공개제도가 없어진 것이다.

 정치자금을 투명화하려는 고민 없이 당장 청목회 수사 등 입법 로비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항에만 손을 댔다. 그래서 “청목회의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동료 의원 6명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법개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다.

 정치인이 소액 다수의 후원금을 거두는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 행안위의 정치자금법 기습 처리는 일단 방법이 잘못됐다. 시기도 문제다. 그들은 청목회 사건과 연관돼 면소(免訴)가 될 수 있는 시기를 택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후원금의 투명한 공개’ 조항을 슬그머니 외면해 버린 건 더욱 문제다.

 ‘정치자금 투명화’ 방안은 법안의 개정을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었다. 여야 행안위원들이 정치자금법을 기습 처리하는 날, 그들은 바로 이 명분을 외면해 버렸다.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