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58) 백신의 모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지난해 말 한반도를 강타한 구제역. 그나마 백신 2차 접종이 완료되면서 더 이상 번지지는 않는 모양새다. 2009∼2010년에는 신종 플루가 기승을 부렸다. 다국적 제약사의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의 처방이 1차 방어벽으로 활용됐다. 이후 더 이상의 확산을 막은 일등공신은 백신이었다. 백신은 영·유아 시절에 맞아야 하는 것에서부터 매년 맞아야 하는 것까지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암을 예방하는 백신도 나오고 있다. 건강한 내 몸을 위해 필요한 백신이 무엇인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등에 대해 알아본다.

심재우 기자

백신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없애거나 약하게 만든다. 이것이 몸속에 투입되면 우리 몸의 항체가 이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고, 그 결과 체내에 기억세포가 만들어진다. 나중에 세균이 체내에 침입했을 때 기억세포가 활성화하면서 세균을 무찌를 항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이로 인해 우리 몸이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 백신의 원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백신 예방접종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천연두는 1970년대 후반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유럽에서는 21세기 들어 소아마비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현재까지 개발된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은 27가지 이상에 이른다. 매년 백신 접종을 통해 약 600만 명이 목숨을 구하고 있으며, 75만 명의 어린이가 장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러스트=강일구]



1776년 제너가 백신 이용하는 ‘종두법’ 첫 발견

백신의 역사는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 예방을 위해 종두법을 발견한 1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닭콜레라와 탄저병·광견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차례로 만들었고, 베링(Emil Adolf von Behring)은 디프테리아 치료법을 개발한 공로로 19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종두법 개발 이후 콜레라·장티푸스·디프테리아와 파상풍·결핵·인플루엔자·성홍열 등에 대한 백신이 개발돼 인류를 괴롭히던 9대 질병이 현저히 감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급속히 발달한 조직 배양기술은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분리해 키워내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를 토대로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해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등 21종의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됐다.

가다실, 타임지 선정 ‘2006년 최고의 발명품’

2006년 미국 머크사는 최초의 암 예방 백신인 가다실을 출시했다. 여성 자궁경부암 예방이 가능한 백신이다. 자궁경부암은 전 세계에서 둘째로 흔한 여성암이다. 매년 약 50만 명의 환자가 새로 생기고, 이 가운데 25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여성 12명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매일 3명이 이로 인해 사망한다. 국내 여성암 사망률 2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가다실은 지금까지 전 세계 111개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또한 타임지가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가다실은 현재 전 세계 28개국에서 국가 백신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미국의 몇 개 주를 포함해 캐나다·그리스·스페인·영국 등에서는 특정 연령대에 대해 무료 접종을 하고 있다.

아직 개발 단계이고 출시는 안 됐지만, 담배를 끊거나 금연 후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하는 ‘금연’ 백신이란 것이 요즘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나비 바이오파머슈티컬스’가 개발 중인 금연 백신 ‘닉백스(NicVAX)’다. 그간 임상시험 참가자들의 30% 이상이 금연에 성공하는 등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니코틴이 뇌를 자극해 일종의 쾌감을 주기 때문인데, 닉백스를 투여하면 니코틴의 활동을 방해하는 항체가 생성돼 니코틴이 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유정란 이용하다 세포배양 → DNA배양 발전

전통적인 백신은 유정란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조각 내 주사제에 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예방이 가능한 질병의 영역은 주로 바이러스 질환에 한정됐으며, 백신 생산에 6개월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유정란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거나 그 밖의 이유로 유정란이 오염됐을 경우 백신의 안전성이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유정란 백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생겨난 것이 세포 배양 백신이다. 동물의 기관이나 조직 세포를 배양액에 담고 기계 속에서 바이러스 등을 배양해 생산한다. 유정란 방식보다 백신 생산 기간이 짧아 갑자기 신종 플루와 같은 전염성 질병이 유행할 경우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여기서 좀 더 진일보한 것이 DNA 배양 백신이다. 이는 죽은 병원균을 직접 주사하는 것이 아니고 동물세포 안으로 바이러스의 DNA를 집어넣어 세포 안에서 항원이 만들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세포 배양 방식보다도 제조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살아 있거나 감염의 위험성이 있는 바이러스를 직접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용성과 안전성 면에서 장점이 있다. 또한 기존 방식으로는 생산이 어려웠던 에이즈와 암, C형 간염 등의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차세대 생산공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AI·신종플루 대공세 … 제약업계의 황금시장으로

백신이 등장하면서 일부 바이러스는 자취를 감췄다. 사진 위는 1회용 주사기에 들어 있는 로타바이러스 백신과 소아마비 백신. 사진 아래는 2009∼2010년 위력을 발휘한 신종 플루 백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제공]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백신은 제약산업에서 찬밥 신세였다. 복잡한 제조기술과 거액의 투자비를 쏟아붓고도 개발에 실패했을 때 시간적·금전적 손실이 커 홀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조류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등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과 미생물 테러 위협의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새로운 백신 개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제약사의 새로운 경쟁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노피-파스퇴르를 비롯해 머크·와이어스 등 몇 안 되는 기업들이 백신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하며 세계 백신시장을 이끌어 왔다. 이 때문에 시장 진입 장벽 또한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들 기업 외에도 기술 집약적인 백신 바이오 벤처들이 등장하면서 대형 제약사와 벤처기업 간 라이선싱 계약이나 제약사 간 인수합병(M&A) 등이 이뤄지고 있다. 2009년 말 680억 달러(약 75조원)를 들여 화이자가 백신전문 기업 와이어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오·제약 컨설팅업체인 칼로라마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백신시장은 2008년 190억 달러에서 2009년 221억 달러로 성장했고, 앞으로 연평균 9.7%씩 성장해 2014년에 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09년 기준으로 GSK·사노피-파스퇴르·머크·화이자·노바티스 등 5개 제약사가 전 세계 백신시장의 83.7%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토종 한국 제약사의 백신 경쟁력은 어떨까. 그나마 녹십자가 있어 체면치레를 하는 중이다. 신종 플루 백신을 자체적으로 생산했고, 그 이전에는 독감 백신까지 만들어내며 수출길을 열고 있다. 하도 ‘독감’이란 말이 흔해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독감 백신은 전세계에서 10개국 정도만 만들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녹십자는 1983년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하면서 국내 간염환자 비율을 뚝 떨어뜨렸다. 이후 한탄바이러스·수두바이러스·일본뇌염 등 다양한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녹십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허은철 부사장은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예방하는 비용이 더 적은 만큼 공중보건 차원에서도 백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세계 5대 제약사가 차지하고 있는 백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만의 ‘레시피’가 확보된 수두·디프테리아·백일해·결핵 백신 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사 맞기 정말 싫은데

먹는 백신, 뿌리는 백신 …

혀밑에 넣는 것도 있어요

‘백신’ 하면 어릴 적에 울어 가며 맞았던 주사를 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기존 주삿바늘보다 10배 이상 짧은 극소주사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먹는 백신, 뿌리는 백신, 혀 밑에 넣는 백신까지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노피-파스퇴르는 지난해 극소주사기 형태의 독감 예방 백신 ‘아이디 플루’를 내놨다. 아이디 플루를 놓는 주사기는 길이가 1.5㎜로, 기존 주사기의 10분의 1 정도다. 근육주사인 기존 독감 백신들과는 달리 피부 내 진피 조직으로 직접 주사하는 방식이다.

먹는 백신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유아 로타바이러스 장염 예방백신이다. 2007년 머크(한국에선 MSD)가 ‘로타텍’이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했다. 영유아들이 거부감 없이 접종할 수 있도록 튜브에서 짜 먹이는 형태로 개발됐다. 로타바이러스는 5세 미만의 95%가 감염된다.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설사와 고열을 동반한 장염을 일으킨다. 로타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한 것은 물론, 살균과 소독으로도 100% 예방할 수 없다.

코에 뿌려서 흡입하는 방식의 백신도 등장했다. 지난해 녹십자가 미국 메드이뮨에서 수입한 독감 백신 ‘플루미스트(Flu Mist)’는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형 백신이다. 미국에서는 2003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플루미스트는 약물이 직접 인체 순환기를 통해 유입되므로 기존 백신보다 높은 면역률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 소재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2008년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혀 밑에 넣는 백신인 ‘설하 백신’을 개발했다. 설하 백신은 말 그대로 백신을 혀 밑으로 투여하면 구강 점막을 통해 몸 안에 흡수되고, 병원체의 주 침투 경로인 호흡기·소화기 등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형태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e-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뉴스클립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