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중재 아시아의 허브로 최적 조건 갖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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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법원의 제이슨 프라이 사무총장(오른쪽)과 세계상사중재위원회(ICCA) 김갑유 변호사가 4일 신라호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은 지금 당장이라도 아시아의 국제중재 허브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 국제중재기구인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법원의 제이슨 프라이(45)사무총장과 UN 산하 국제중재기구인 세계상사중재위원회(ICCA)의 김갑유(48·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사무총장이 4일 이렇게 입을 모았다.

ICC에서 함께 일한 인연을 지닌 두 사람은 이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본지와 공동 인터뷰를 했다. 프라이 사무총장은 국제변호사협회(IBA) 주최로 열린 국제중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프라이 사무총장은 먼저 “국제중재 장소로 각광을 받으려면 법 제도가 완비되고 사법조직이 안정돼 있으며 호텔 등 숙박시설도 좋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서울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한국 법조인들의 실력도 뛰어나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꼽았다.

 김 사무총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중립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중재 분야에서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중재사건을 서울로 유치하려면 싱가포르처럼 하드웨어도 갖춰야 한다”며 “서울에 국제중재센터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프라이 사무총장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블루오션으로 중국과 미국 기업간 국제상사분쟁 사건을 꼽았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다. 동시에 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미국 변호사도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는 ICC 중재법원은 전세계 국제중재 사건의 50% 이상을 처리한다. 지난 한 해 ICC가 처리한 국제중재 사건 가운데 중재 장소로 가장 많이 이용된 곳은 파리(124건)였다. 아시아 지역에선 싱가포르가 24건, 홍콩이 14건이었지만 서울은 단 한건도 없었다.

 프라이 사무총장은 “2006년부터 5년간 한국기업이 관련된 중재 사건이 161건으로 중국(124건), 일본(95건)을 크게 앞섰다”며 “그런데도 서울이 국제중재 장소로 잘 이용되지 않는 건 한국 기업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이 중재 장소를 서울로 하자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책은 없을까. 김 사무총장은 “싱가포르는 국제중재 관련 비지니스에 대해 세제 혜택을 준다”며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재 전문인력 풀도 탄탄하다”고 제시했다. 프라이 사무총장은 “동북아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외국 기업들이 서울에서 중재를 하도록 유인하려면 법원 판례 등의 자료를 영어로 제작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승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두 사람은 “10년 전에는 외국 로펌이 국제중재사건을 주도하고 한국 로펌은 보조 역할을 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역전됐다”고 했다. 실제로 국제중재 전문잡지인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GAR)’는 분쟁 금액이 2조5000억원대였던 ‘현대오일뱅크’ 국제중재 사건을 ‘2010년 최고의 중재사건’으로 선정했다.

글=조강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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