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읽기] 근대와 여성 … 1930년대에 이미 가슴성형 있었다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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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예쁜 여자 만들기
이영아 지음, 푸른역사
344쪽, 1만3900원

미인이 되기 위한 노하우를 일러주는 실용서가 아니다. ‘베이글녀(아기 얼굴 같은 동안에 글래머 스타일)’며 ‘S라인’이 판치는 오늘날의 미인상이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았는지 캐낸 인문교양서다. 이 과정에 온갖 진기한 사실이 드러낸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시대 미인은 얼굴 생김새가 중요했지, 몸매는 뒷전이었다. 그래서 당시 미인도를 보면 상체는 평평하고 좁으며 하체는 풍만해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몸매였다. 그러던 것이 개항 이후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1922년 월간지 ‘부인’에 실린 “어여쁜 여자를 보아 그 시대의 문명이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합니다”란 기사처럼 백인 여성의 미적 기준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졌다. 예를 들어 치마길이가 짧아지고 가슴을 한껏 조이던 한복의 가슴띠 대신 어깨걸이가 등장했다. 오물이 가득하고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을 쓸고 다녀 건강을 해치는 긴 치마 대신 짧은 치마를 입자는 논리가 주효했다. 짧은 치마 덕에 프랑스 여성 결핵 환자가 줄었다는 사례가지 언론에 등장했다. 이처럼 ‘모던 걸’ 중심으로 신체 노출이 늘어난 옷차림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은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아니, 남성 위주의 미의식에 지배당하게 되었다.

『예쁜 여자 만들기』의 저자에 따르면 풍만한 가슴, 잘룩한 허리 같은 ‘S라인’을 평가하는 경향이 1930년대부터 자리잡았다고 한다. 사진은 1929년 4월 한 일간지의 ‘다리 미용술’ 소개 코너에 실린 삽화다.

 일종의 기생인명사전인 『조선미인보감』을 시작으로 신문에 미녀품평기나 ‘각선미’을 다듬기 위한 미용체조법 등이 실리는 등 여성들은 ‘개화’ ‘개량’의 물결에 휩쓸려 들었다. 1930년대 풍만한 가슴과 잘룩한 허리, 볼륨있는 엉덩이, 미끈한 각선미 등 ‘S라인’을 평가하는 경향이 확실히 자리잡았다. 잡지 ‘삼천리’가 사진으로 선발하는 ‘삼천리 일색’이란 일종의 미인경연대회를 시작하고. 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 같은 남성명사들이 공개적으로 “어깨가 좁을 것, 허리춤이 날씬하여 벌의 허리처럼 될 것, 둔부가 넓어야 할 것, 대퇴는 굵되 발끝으로 옮겨오면서 뽐은 듯 솔직해야 할 것” 이라며 미인의 기준을 논한 것이 이때 일이다.

 당연히 여성들은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아름다워야 ‘잘 팔리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성형수술까지 등장했다. 당시 매체를 보면 쌍꺼풀 수술은 물론 코를 높이는 융비술에 다리지방 제거수술, 가슴성형 수술까지 다뤄진다. 쌍꺼풀 눈이 미인의 조건이 되면서 조선인 최초로 이 수술을 받은 배우 출신의 미용사 오엽주는 당대의 문사 심훈에게 청혼을 받을 정도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인 지은이는 그러나 근대의 많은 미인들이 실은 행복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또한 1940년 들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가 강화되면서 사회조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국력의 바탕이 되는 출산을 위해 여성의 ‘건강’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음을 들어 ‘예쁜 여자’란 국가와 시대가 여성에게 부과한 족쇄였다고도 한다.

 “당신이 예뻐지고자 하는 건 당신의 뜻이 아니라 근대, 국가, 자본이라는 ‘권력’의 뜻이야. 그러니 예뻐지려고 해도, 예뻐지려고 하지 않아도 당신이 틀린 것은 아니야”라고 집필 목적을 정리하면서 소비의 대상이자 주체로서 각각의 여성이 ‘n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자고 제안한다.

‘예쁜 여자 권하는 사회’에서 단순한 이야기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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