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카다피 패션엔 광기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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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미친 의상들을 갖고 있다(The Emperor Has Some Crazy Clothes)’.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3일 리비아 최고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진 15장을 인터넷판에 올려놓고 이런 제목을 달았다. 카다피의 패션이 화제가 된 건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 중인 최근의 내전 때문만은 아니다. 주변 시각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그의 튀는 의상은 42년의 철권 통치기간 동안 보여준 악행과 기행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패션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달랐다. 아주 이따금 긍정적으로 평가한 외신도 없지 않았다.

① 2009년 7월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카다피의 모습. 미국의 타임은 “미인대회 참가를 위해 입은 옷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② 2009년 이탈리아를 방문한 카다피는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항의 표시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오른쪽가슴에 붙이고 나타났다. ③ 2009년 트리폴리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카다피는 훈장이 잔뜩 붙어 있는 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타임은 “옷에 붙은 장식물의 무게 때문에 옷감이 상할까 우려된다”고 혹평했다. ④ 2010년 트리폴리의 국제포럼에 참석한 카다피의 모습. “내가 아프리카 왕 중의 왕”이라고 했던 그의 과거 발언을 연상시킨다. ⑤ 2007년 7월 리비아를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환영식에서 카다피가 입은 옷을 두고 타임은 “나이트클럽에나 어울리는 복장”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9월 “독재자의 카리스마를 극대화하기 위해 때와 장소에 맞춰 팔색조처럼 다양한 패션스타일을 선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카다피는 과거 리비아를 20년간 식민 통치한 이탈리아를 2009년 처음 방문했을 때 리비아 독립운동 지도자인 우마르 무크타르의 사진을 오른 가슴에 오려붙이고 나타났었다. 이탈리아군에 의해 처형된 그의 사진을 통해 과거의 식민 통치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외신 대부분의 평가는 비우호적이다. 타임은 2009년 카다피를 ‘세계에서 가장 옷을 못 입는 10명의 지도자’로 꼽았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인 배니티 페어도 같은 해 ‘세계무대에서 가장 뻔뻔한 옷차림의 인물’로 그를 선발했다. ‘주변과의 조화를 무시한, 관습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 기괴한 패션’이란 혹평이 주조를 이뤘다. 이번 타임의 평가는 더 혹독했다. 2009년 아프리카 정상회의 때 입었던 노란색 의상에 대해선 “겨자 자국을 가리기에 좋은 의상”이라고 비아냥댔다. 또 2007년 리비아를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환영식에서 입은 검은색과 흰색의 의상에 대해선 “시골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 미국영화 ‘록스베리 나이트’에나 등장할 옷”이라고 했다.

 카다피의 의상이 리비아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등 서방을 향해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냈던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강인한 이미지의 군복 차림을 고집했다면, 2003년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뒤엔 풍성한 북아프리카식 전통의상과 액세서리를 자주 착용한다고 한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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