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돈 풀기’놓고 버냉키·버핏 입씨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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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左), 워런 버핏(右)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수장과 ‘오마하의 현자’로 불리는 투자 귀재가 한판 붙었다. Fed의 양적 완화 정책과 달러 위상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서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논쟁을 벌인 건 아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같은 주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는 주장을 펼쳤다. 벤 버냉키(Ben Bernanke) Fed 의장이 1~2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한 발언과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CNBC 인터뷰를 토대로 두 사람의 논쟁을 대화 형식으로 재현해 봤다.

▶버냉키=미국 경제 전반에 낙관적 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소비자도 다시 지갑을 열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회복세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고용시장의 회복이 더디다. 정규직보다는 임시직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버핏=경제엔 늘 부침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 경기는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현재 9%대인 실업률도 내년 11월이면 7%대로 내려올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거느리고 있는 기업들의 사정을 봐도 그렇다. 80%는 올해 고용을 늘릴 계획이다. 미국 경제는 면역력을 회복했다. 따라서 더 이상의 경기부양책은 불필요하다.

▶버냉키=섣불리 양적 완화 정책을 중단했다가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은 원치 않는다. 오는 6월까지 예정한 6000억 달러의 2차 양적 완화 정책도 예정대로 집행할 것이다. 3차 양적 완화 정책 결정 여부도 물가와 실업률을 감안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결정할 문제다.

▶버핏=2008년엔 Fed의 신속하고 과감한 양적 완화 정책이 경기 파국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에 관해선 버냉키 의장의 지도력을 깊이 존경한다. Fed의 임무에 대해선 버냉키 의장이 나보다 100배는 더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의 양적 완화 정책은 인플레이션 위험만 키울 뿐이다.

▶버냉키=Fed도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현상)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최근 중동·북아프리카 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다만 유가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 한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Fed는 물가를 쌍방향 모두 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버핏=중동·북아프리카 사태로 인한 충격을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아직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입을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은 주의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는 부채를 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은 피하기 어렵다. 증세를 하거나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버냉키=지나친 예산 삭감은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공화당 요구대로 2011회계연도 예산에서 610억 달러를 삭감하면 경제성장률이 0.2% 떨어진다. 이는 20만 개 일자리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버핏=미국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 Fed도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한다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도 몇 년 못 가 위축될 것이다. 세계경제 시스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하는 건 물론이다.

▶버냉키=현재 시점에서 달러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어떤 조짐도 발견할 수 없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으로, 경기 부양이 목적이다. 200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1조7000억 달러에 이르는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돈을 풀었던 것이 1차 양적 완화(QE1), 지난해 11월부터 6월까지 국채 매입을 통해 6000억 달러의 돈을 푼 것이 2차 양적 완화(QE2)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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