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스승과 80세 제자…'애기선생님'이 안아주면 눈물이 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0대 어르신을 어르는 12살 '애기선생님'이 화제다. 어르신들에게는 나름 엄하다. 하지만 안아줄 땐 푸근한 스승이 따로 없다.
서울 신당동의 서울형 데이케어(치매노인보호)센터. 10여 명의 치매 어르신들 사이로 12살의 김민선(청구초 5)양이 교실을 오가며 “이렇게 그리는 거예요”라고 꼬치꼬치 간섭을 한다. 60~80대의 어르신들이다. 이 센터에서 김양은 ‘애기선생님’으로 불린다. 김양은 이 곳에서 치매 어르신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학원 대신 치매센터에 가요

김양은 치매센터의 무료미술수업 강사인 어머니 문미숙(49)씨를 따라 지난 해 8월부터 보조강사로 일을 했다. 김양은 어르신들과 게임도 하고 말벗도 돼 준다. 6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지만 허물없는 친구로 대접받는다. “매주 화요일 저녁, 치매센터에 와서 어르신들과 놀아요.”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저녁 8시,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김양은 불평 한 마디 안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르신들의 어깨를 주무를 뿐이다. 이범호 할아버지는 “‘애기선생님’이 어깨를 주물러 주면 너무 시원하다”라고 즐거워한다. 내친김에 김양은 친구인 고가연양과 정현군도 치매센터로 데리고 왔다. 정군은 다니던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일주일에 한번 치매센터의 어르신에게 놀러 온다. 문씨는 “올해 밸런타인데이 때 센터에서 나눠준 초콜릿을 어르신들이 모두 ‘애기선생님’들에게 줬다”며 ‘애기선생님’들의 인기가 높아 약간 샘도 난다.”고 했다. 차양순 할머니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는 ‘애기선생님’이 안아주니까 눈물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가족 모두 '선생님'

문씨와 큰 딸 김민전(24, 현직 유치원 교사)씨도 이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작년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민선이가 의젓해 졌어요.” 치매센터에 민선양이 드나 든지 1년 반, 문씨는 막내딸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게 됐다고 기뻐한다.

이 센터의 가족 선생님은 문씨 가족만이 아니다.
이경자(56)씨와 딸 유지연(27·성신여대 대학원)도 가족 선생님이다. 이씨는 꽃꽂이수업을 한다. 그는 "수업시간만 되면 웃음꽃이 핍니다. 할머니들이 꽃을 더 많이 갖겠다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옆자리 할머니의 꽃을 슬그머니 가져다 자기 자리에 놓을 때는 너무 귀여워요”라며 "치매를 앓는 할머니들이지만 꽃을 좋아하는, 천상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올 2월부터 미술심리치료 수업을 어르신들에게 하고 있다. 이 모녀는 하루에 5시간을 잔다고 한다. “이거 봉사활동 아니에요. 그저 같이 노는 건데요” 천연덕스레 말하는 이씨다.

서울시는 치매노인을 위한 데이케어(치매노인보호)센터 215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치매어르신 5,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들 센터는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하지만 신당동 데이케어(치매노인보호)센터의 김창남 센터장은 “자원봉사자들이 대게 주말이나 비슷한 시간대에 몰려 평일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며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온라인 편집국=김정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