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로스쿨생 검사 우선 임용’ 반발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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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빈 입소식 신임 사법연수원생들의 절반 이상이 2일 열린 입소식에 불참했다. [연합뉴스]


법무부의 ‘로스쿨생 검사 우선 임용’ 방침에 반발해 신입 사법연수생 절반이 사실상 집단 행동에 나섰다. ‘사법시험 출신’의 법조인과 로스쿨생들의 힘겨루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갈등에는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 처우가 나빠질 것이란 불안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예비 법조인들이 집단 행동부터 배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 기성 법조인들이 판·검사 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검사복을 누가 입을 지를 놓고 사법시험 출신 법조인과 로스쿨생의 힘겨루기가 사법연수생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2일 오전 사법연수원(원장 김이수)은 42기 사법연수생 임명장 수여식(연수원 입소식)을 했지만 974명 중 400여 명만 참석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해마다 입소식엔 사법연수생들이 거의 전원 참석해왔다. 이날 오전 10시 입소식이 시작됐지만 자리는 절반도 차지 않았다. 앞서 14개 반별로 열린 교수 상견례 및 명찰 배부식도 마찬가지였다. 불참 학생과 학부모 중 일부는 연수생 기숙사 건물에서 TV 중계를 통해 임명장 수여식을 지켜봤다.

 김이수 연수원장이 연수생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동안 불참 연수생 2명이 단상 아래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42기 연수생 카페를 운영하는 김두섭(30)·오규진(32)씨 등이 ‘로스쿨 검사 임용 방안 철회’라고 쓴 현수막을 기습적으로 펼친 것이다. 오씨는 “로스쿨 출신의 검사나 법관 자체를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다. 선발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2기 연수생 자치회장 손정윤(44)씨는 “내일 정식으로 42기 자치회가 꾸려지면 동기 연수생 전원의 동의를 받아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위법 행위 등 강력한 단체 행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41기 연수생들도 이날 “법무부의 로스쿨생 검사 사전 선발은 현대판 음서제”라며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배출되기 전에는 연수원 수료자들만으로 신규 검사가 임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예비 법조인, 특히 국가공무원 신분인 연수생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치주의를 실현할 책무를 지게 된 연수생들이 첫 단계(입소식)부터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야 되겠느냐”며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연수원, 경위 파악 착수=연수원은 입소식 거부 사태에 대한 경위 파악에 들어갔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정확한 경위가 파악된 뒤 이번 일의 처리 방침이 정해질 것”이라며 “아직 어떤 방침이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연수원과 법원 안팎에서는 징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사법연수원 운영규칙은 ▶법령과 연수원 규정에 위반했을 때 ▶수습상 의무에 위반하거나 수습을 게을리 했을 때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연수생을 파면, 정직, 감봉, 견책 등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안이 경미한 때에는 서면경고나 주의촉구 등을 할 수 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입소식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플래카드를 펼친 것은 적극적인 행사 방해에 해당해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구희령·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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