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외치더니 … 제 발목 잡는 대교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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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영길 회장

대학총장들의 자율 협의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교육과학기술부의 관치(官治)를 대행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입시와 학사 등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의 자율을 주장하던 대교협이 교과부 주문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은 대교협이 올해부터 교과부가 시행 중인 교육역량 강화사업의 운영과 관리를 맡게 된 문제다. 이 사업은 대입전형(논술비중 축소)과 등록금 등 교과부가 정한 아홉 가지 기준을 잘 따르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많이 해 준다.

 교과부는 최근 교육역량 강화사업 관리·운영규정을 개정해 6월 이후부터 사업 위탁기관을 대교협으로 이관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지원대학 선정(지원금 2420억원) 작업은 기존의 한국연구재단이 맡되 관리와 내년 사업 지원 대상자 선정 등은 대교협에 넘긴다는 것이다. 회원 대학의 회비(연간 최대 7000만원)로 운영하는 대교협이 정부를 대신해 대학을 감독하고 돈을 나눠 주는 기관이 되는 셈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교과부가 사업을 넘겨받을 것을 요구해 맡게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올 1월 대교협 정기총회에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이관계획을 총장들에게 밝혔는데 거부의사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대교협이 관치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교과부가 재정 지원사업을 대교협에 맡기는 것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에게 심판까지 맡게 하는 일”이라며 “대교협이 이젠 정부기관이 됐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교협이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눠 먹기식으로 돈을 나눠 주고 느슨하게 관리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점도 우려된다. 미국에서도 공정한 선정과 엄격한 사후관리를 위해 정부의 연구개발자금은 독립 연방기구인 국립과학재단(NSF)이 맡는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대교협이 2009학년도부터 대입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취업률 등 대학 정보공시 업무도 맡고 있어 회원 대학의 재정 지원사업을 맡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학들은 지원 대학으로 선정되기 위해 예정에 없이 논술 비중을 줄이는 등 자율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대·서강대 등 많은 대학이 논술 실시계획을 철회했고, 동국대는 등록금을 4.9%로 올렸다가 2.8%로 내렸다.

◆김영길 신임 회장 취임=대교협은 이날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김영길(한동대 총장) 회장의 취임식을 했다. 김 회장은 “대교협은 대학과 교과부의 중재자이지 종속관계에 있지 않다”며 “정부가 뭔가를 제시하면 여러 대학의 의견을 들어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대교협이 교과부로부터 다양한 권한을 이양받아 준정부기관처럼 관료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그는 또 “정부가 (등록금 인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고 따르도록 권장하는 것 같은데 등록금은 학교 등록금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교과부가 독려해 온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어긴 대학은 대교협이 제재하거나 심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홍준·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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