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최고 밥맛 … 경기미 ‘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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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쌀매장. 전국 각지에서 온 쌀이 쌓여 있다. 가격과 원산지를 신중하게 살피던 주부 정보라(32·서울 중구)씨는 10㎏짜리 ‘임금님표 이천쌀’(2만8800원)을 카트에 옮겨 실었다. 정씨는 “인터넷으로 평택의 ‘슈퍼오닝쌀’도 자주 산다”며 “경기미가 다른 곳 쌀보다 2000~6000원 정도 비싸지만 밥맛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경기미(米)하면 이천·여주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진상미’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이천시는 이런 전통을 활용해 1995년 ‘임금님표’라는 브랜드쌀을 내놨다. 여주군 역시 1999년 ‘대왕님표’라는 브랜드를 선보였다. 하지만 경기도의 다른 지역은 이천·여주쌀을 최고의 경기미로 인정하지 않는다. 저마다 브랜드쌀을 내놓고 이천·여주쌀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경기미 브랜드는 214개에 달한다. 경기미의 ‘춘추전국시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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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평택쌀을 이천·여주쌀과 비교하지 말아 달라.” 2005년 ‘Super(대단한)’ ‘Original(원래의)’ ‘Morning(아침)’이라는 영어 단어의 합성어인 ‘슈퍼오닝쌀’을 내놓은 평택시의 김주원 농정과장의 말이다.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택시는 종자 선정과 생산·재배 과정, 비료의 양까지 시 조례로 정해 관리하고 있다. 10㎏ 한 포대 가격도 이천·여주쌀과 동일한 2만8000원 선이다. ‘슈퍼오닝쌀’은 2007년 경기미 중 처음으로 미국 수출에 성공했고 2009년엔 호주·독일로도 수출했다.

 김포시의 ‘김포금쌀’도 강력한 도전자다. 김포는 통진면 가현리에서 5000년 전의 탄화된 쌀이 발견된 한반도 최초의 벼 재배지다. 2000년 브랜드 이름을 정하고 ‘5000년 역사의 쌀’이라는 것을 내세워 마케팅을 해 왔다. 신김포농협 한종욱 계장은 “김포쌀도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는데 2인자 취급을 받아 왔다”며 “금쌀은 육성·재배 단계부터 유통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생산 이력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청와대 식당에 납품해 대통령 밥상에까지 올랐다. 이천시와 여주군도 쌀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맞춤비료를 쓰는 등 최고의 쌀이라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도 2008년 ‘-199G+Rice’라는 쌀브랜드를 내놓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금이 가거나 부서지지 않은 완전미 비율이 97% 이상, 단백질 함량 6.3% 이하인 쌀만을 선별한다. 199가지 유해물질을 크게 줄였다는 의미에서 -199라는 것을 브랜드에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너무 많은 경기미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어 자칫하면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경기도에서 생산되지 않은 쌀을 도정만 해 브랜드를 붙여 팔다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열 경기도 브랜드마케팅 팀장은 “쌀 소비가 계속 줄고 있어 명품 브랜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품질 개선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쌀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경기미=경기도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기온과 밤낮의 일교차가 커 쌀 품종 중 최고라는 추청(秋晴)벼를 재배하는 데 적합하다. 강의 범람으로 퇴적된 고래실(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이 많고 물을 쉽게 댈 수 있어 쌀의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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