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엄마들 정보력, 월 100만원 학원보다 한수 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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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중·고교생 엄마 3만 명이 가입한 인터넷카페 ‘국자인’ 회원들이 지난달 18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권희숙·이미애(국자인 대표)·이선경·이윤선·조은경·윤현주·성미영씨. 이들은 대입 노하우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전북 익산에 사는 고3 학부모 이현숙(44)씨는 거의 매주 3시간씩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온다. 이씨는 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대치동에 있는 네이버 카페 ‘국자인’(국제교류와 자원봉사와 인턴십과 비교과)의 사무실로 달려간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고3맘 스터디 모임과 국자인 주최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선 스터디 모임에서 미리 읽어오기로 한 대학별 입시요강을 읽느라 쉴 틈도 없었다. 지난달 26일에도 국자인 특강 참석차 서울에 온 이씨는 “지방에선 대입 정보도 부족하고 비교과활동 프로그램도 변변찮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지난해 여름 국자인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회원수 3만 명인 국자인의 힘은 엄마 네트워크가 일궈낸 ‘정보력’에 있다. 지난해(2011학년도) 4년제 대학의 수시·정시 전형의 종류가 3600개를 넘고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돼 ‘스펙’이라고 불리는 비교과활동이 중요해지면서 국자인에 엄마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올해부터 진로·봉사·특기활동 내역이 초·중·고 교육과정에 반영되면서 엄마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반면 입시 컨설팅업체들은 수시·정시·연회원 컨설팅 등 새 상품을 쏟아냈다. 월 100만원부터 연간 800만원 등 값은 계속 치솟는다. 봉사활동 스펙을 쌓아준다며 연간 12회 일정을 짜주고는 70만원을 받는다는 상품도 나왔다

 사교육 상술이 국자인 엄마들에겐 안 통했다. 입시 전문가 수준의 베테랑 엄마들이 검증하고 걸러낸 정보를 다른 엄마들이 믿고 더 좋은 프로그램들을 찾아내면서 사교육 컨설팅업체의 정보력을 능가했다. ‘국자인 서포터스’로 활동하는 엄마들은 정부 부처나 대학·민간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믿을 만하고 저렴한 비교과활동 정보를 게시판에 올렸다. 효과나 프로그램 내용이 과장된 경우는 거침없이 지적했다.

 서포터스 최선영(44)씨는 “컨설팅업체들이 내놓은 봉사활동 프로그램 중엔 알고 보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경제력·정보력이 떨어지면 대입에서 불리한 현실에선 엄마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자인을 통해 딸의 대학 입시를 마친 윤현주(44)씨는 “대학이나 정부가 주는 정보만으론 부족하지만 엄마들이 옥석을 가려서 올려주는 정보는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국자인 회원들은 입시상담료를 안 내는 대신 회비(월 2만원)를 낸다. 지난달 문을 연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비는 회원 70여 명이 낸 회비로 운영된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대다수 회원은 회비는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각자 가진 정보는 내놓아야 한다. 방문 횟수만 있고 댓글을 달지 않거나 정보를 올리지 않으면 게시 글을 읽을 수 없는 등급으로 내려간다.

 국자인에선 직장맘들도 기죽지 않아도 된다. 토요일 오전에 직장맘 30여 명이 사무실에 모여 정보를 나눈다. 교사 출신 엄마들도 많다. 서울 모 고교 교사인 신옥숙(46)씨는 “내 자식뿐만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에게도 좋은 정보 많이 알려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글=박수련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국자인’은

- 인터넷 카페 : cafe.naver.com/athensga

- 회원 수 : 2만9683명

- 가입조건 : 초·중·고생 학부모(엄마 위주, 사교육 관계자 배제)

- 원칙 : “정보는 공유하고, 배워서 남 주자”

- 사무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972- 8 101호

어떤 정보 나누나

▶입시전략 스터디

- 올 1월 중3~고3 엄마 50여 명 스터디그룹 6개 발족

- 대입 치른 엄마들이 노하우 전수 멘토링

▶학생·학부모 입시상담(인터넷)

- 대입 경험 있는 ‘드림 코디네이터’ 엄마들이 상담

▶비교과 활동 정보 수집·공유(인터넷)

- 정보통 엄마들, 국제교류·봉사활동·인턴십 정보 게재

- 일반회원도 각자 정보 올려 공유

▶교육전문가 특강

- 진학·진로지도 스타 교사의 칼럼 게재 및 초청 특강

▶국제교류·봉사활동 기획

- 자녀 위한 봉사활동과 엄마봉사단 운영

- 중·고생 모의 유엔대회 등 개최

‘국자인’ 이미애 대표

이미애(49) 대표가 수험생 엄마들의 멘토가 된 것은 입시 정보를 몰라 혼자 끙끙대야 했던 경험 때문이다. 12년간 학원에서 토익을 가르쳤던 그는 2006년 직장을 그만뒀다. 고 2 아들의 대입을 위해서였다. 이씨는 “대치동에 10년 넘게 살며 주변 엄마들과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대입 경쟁이 본격화하자 ‘엄마 네트워크’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어울리던 엄마들이 알짜 정보는 감추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혼자 해보겠다”며 대학별 입시요강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외계인 말’ 같은 입시용어는 대학에 직접 물어봤다. 결국 수학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들에게 맞는 전형을 찾아냈다. 합격에 필요한 비교과활동 정보도 구해 ‘스펙’을 쌓아갔다. 2007년 10월 아들이 수시에 합격하자 그는 후배 엄마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씨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좌절감을 다른 엄마들이 되풀이하는 건 사교육 배만 불려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자인 카페의 취지는.

 “수험생 엄마가 되면 낯선 얼음판을 걷는 기분인데, 학원들은 자기네가 다 안다며 붙잡는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뒤통수 맞았다는 느낌이 든다. 엄마들이 정보를 공유하면 컨설팅업체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내 자식 대학 보내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는 게 입시’라는데, 이걸 깨면 엄마들의 정신적 고통과 사교육비를 모두 줄일 수 있다.”

-무료로 봉사하는 게 대단하다.

 “아들 대학에 보내고 1년가량 입시상담 일을 했다. 내 자식 같아 돈 받고는 못 하겠더라. ”

-엄마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학원설명회나 컨설팅업체만 쫓아다니면 자녀가 힘들어진다.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엄마가 함께 공부해 적절한 전형을 고르면 애를 들볶지 않게 된다.”

-회원이 3만 명이나 된다.

 “그만큼 정보에 목 말라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힘이 사교육을 이길 수 있다고 본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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