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퇴계와 다산은 왜 의학을 배웠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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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유의(儒醫)열전
김남일 지음, 들녘
292쪽, 1만5000원

안타깝다. 책의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그걸 담아낸 그릇이 요즘 말로 좀 ‘구리다’. 경희대 한의대 교수인 저자의 자부심대로 유의(儒醫), 즉 유학자 의사에 대한 규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문제는 스토리텔링과 디테일인데, 이런 유의도 있고, 저런 유의도 있었다는 식으로 시종한다. 그들이 어떻게 전통 의학에 필이 꽂혔고, 구체적으로 어떤 의학적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유의 열전』은 ‘개척상’감이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 조상들의 건강을 지켜온 파수꾼 그룹에 대한 조명인데, 삼국시대 백제의 의박사(醫博士)와, 신라의 교육기관 ‘의학’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도 등장시키지만, 조선시대 유의 수백 명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이 지점에서 그간의 통념도 깨진다. 중인계층 의사만이 아니고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등 사대부들이 줄줄이 나온다.

 유의란 유학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의학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들은 가업을 잇던 중인 출신의 업의(業醫), 약종상(약재 판매상)과 함께 전통시대 질병과 싸웠던 핵심 멤버다. 1905년 일제 통감부가 한의학 평가절하를 시작할 때도 앞장서 반대했던 그룹이다. 눈에 띄는 게 퇴계를 유의로 분류한 점이다. ‘개업의사’라는 개념에서 잠시 벗어난다면, 퇴계 역시 의사가 맞다. 그는 잔병치레가 많았다. 자기 병을 다스리려고 의학에 입문한 경우다.

 책상물림의 특징대로 퇴계는 중년 이후 심장 계통에 문제가 있었고, 소화기가 안 좋아서인지 항상 배가 더부룩했으며, 설사 구토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친 김에 퇴계는 경북 영천의 한 의원에서 의학 수업을 받았다. 이후 자기 몸을 다스린 것은 물론 주변의 환자들에게 오령산·쌍화탕 등 각종 한약재를 처방해줬다. 꽤 유명한 이야기대로 양생법(전통 건강도인술)을 정리한 『활인심방』(요즘 번역본도 많이 나왔다)을 펴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건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등 실학파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개항 훨씬 이전에 서양의학 정보를 갖고 있었다. 성호의 경우 『성호사설』에서 서양 생리학설을 인용했고, 중국에서 활동하던 서양의사 아담 샬을 소개했다. 국내 첫 시도였다. 서학에 밝았던 다산의 경우 『여유당전서』에서 서양의학 이론을 일부 수용했다. 이런 유의들은 궁중을 무대로 활동한 이도 적지 않지만, 대민 치료를 위해 무료진료에 나섰던 이도 많다.

대표적인 게 좌의정을 지낸 안현(1501~60)이다. 그는 전라감찰사로 있을 때 금손만응고(고약의 일종)를 제조해 백성들의 화농제거에 처방했다. 놀랍게도 그는 별시문과 출신. 그럼에도 의학에 두루 밝았던 것은 유의가 원래 전인적 엘리트였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게 전통의학의 특징이다.

 즉 부분과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전일론(holistic)적 시야가 기본이다. 『주역』 처럼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틀에서 보기 때문에 한학· 경학(經學)에 밝을 경우 자연스레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문리가 터진다. 인간의 몸을 쪼개고 칸막이해서 전공영역을 나누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벗어나 종합의학 ·전일의학을 모색하고 있는 21세기에 새롭게 읽을 만한 게 이 신간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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