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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안드라스 시프 피아노 독주회] 박수도 사절한, 무욕의 베토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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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3일 내한한 안드라스 시프는 베토벤의 마지막 세 소나타로 욕심없는 소리를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58)는 박수를 받지 않았다. 2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32번, Op.111)의 마지막 음이 조용히 울렸을 때다. 성급한 관객 몇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시프는 건반에서 손을 내리지 않았다. 박수소리가 멋쩍게 사그라들었다. 몇 초 후 시프가 몸을 일으켰고 청중도 기립했다.

 이날 독주회는 이처럼 소리보다 침묵이 중요한 시간이었다. 헝가리 태생의 영국 피아니스트 시프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을 쉼 없이 연주했다. 중간휴식 시간을 없앴다. 악장과 악장 사이는 물론 곡이 바뀔 때도 음악은 거의 중단되지 않았다. 그는 전체 여덟개 악장을 마치 한 작품처럼 이어갔다.

 베토벤 후기 소나타에 고정 관념이 있는 음악애호가라면 다소 의아했을 법한 해석을 시프는 내놨다. 세 작품은 1827년 세상을 떠난 베토벤이 1820~22년에 걸쳐 작곡했다. 기존 소나타들의 정형화된 형식을 버렸다. 바흐를 떠올리게 하는 푸가(遁走曲)부터 20세기 음악에나 나올 법한 공포스런 트릴(두 음을 빠르게 교대하며 연주하는 장식기법)까지,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이 이어진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건축물을 보는 듯한 마지막 소나타들을 시프는 동양화처럼 그려냈다. 시종일관 힘을 뺐기 때문이다. 음량이 큰 부분보다 피아니시모(pp,가장 작게)에서 절창(絶唱)이 나왔다.

 30번 소나타의 1악장은 심각한 대신 천진난만 했고 31번의 3악장은 비참하기보다 관조적이었다. 32번에선 어깨에 힘을 뺀 해석이 빛을 발했다. 시프는 평소 32번의 마지막 악장 뒷부분에 대해 “부기-우기(boogie-woogie)를 떠올리게 한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시프는 이날도 ‘19세기 부기-우기’를 신나게 펼쳐놨다. 음악의 헛된 무게에 짓눌려온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했다. 이윽고 종결구 부분에선 찬송가처럼 들리는 노래를 했다. 그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노래”라 해석했던 부분이다. 90여분의 쉼 없는 연주는 이렇게 끝났다. 채우는 대신 버리는 음악의 힘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김호정 기자

▶안드라스 시프 독주회=25일 오후 7시30분 대전문화예술의전당, 02-541-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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