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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정몽구가 고사한 ‘재계 총리’ 에 63세 허창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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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탈하고 검소한 성품의 허창수 회장은 평소 노타이 차림을 즐긴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재계의 총리’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자리. 하지만 이건희(69) 삼성전자 회장은 이를 마다했다. 정몽구(73) 현대·기아자동차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달 24일 새 전경련 회장을 뽑는 총회를 코앞에 둔 상황이 이랬다. 전경련 내부에서 “혹시 이번에도…” 하는 걱정이 나올 정도였다. 회장 임기를 한 달이나 넘겨서야 겨우 차기 회장을 정한, 2007년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차기 회장을 뽑는 24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의 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허창수(63) GS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추대됐다. 통상 전경련은 고문단·회장단이 후보를 추대하면 총회에서 박수로 승인했다. 사실상 허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확정된 것이다.

 전경련 회장단은 통상적으로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후보를 고른다. ①제조업 위주의 ②규모 있는 그룹의 총수이면서 ③적절한 연배와 ④인품을 갖출 것이 기본 조건들이다. 그래서 회장단은 지난해 7월 조석래(76·효성 회장)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뒤 이건희 회장부터 찾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건강도 아주 좋지는 않고, 지금은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전념할 때”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어 정몽구 회장을 접촉했다. 역시 ‘노(No)’였다. 자동차업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져 경영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구본무(66) LG 회장은 전경련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고, 최태원(51) SK 회장은 연배가 맞지 않았다.

“또 표류하나” 하는 걱정이 나올 즈음 회장단 일부에서 허창수 회장을 추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란 것이었다. 주요 그룹에서도 “훌륭하고 적절한 인물”이란 평가를 내렸다. GS그룹과 LG그룹이 한 뿌리인 만큼 전경련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LG그룹을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허 회장은 겸손함과 함께 소탈함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웬만해서는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다. 17일 후보를 정하는 자리에도 노타이 차림의 회색 양복을 입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기도 하다. 걷기도 좋아한다. 임직원들에게 만보계를 사주고 “많이 걸어라”고 권할 정도다. 가끔씩은 점심시간에 역삼동 GS타워 주위를 산책하면서 경영 구상을 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일본 경제잡지를 탐독하는 등 해외 경제·경영 정보를 끊임 없이 수집하는 것으로도 이름났다.

 그가 신임 회장에 취임하게 되면 중심을 잃었던 전경련이 활기를 띨 것으로 재계는 기대한다. 전경련의 위상과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재계 수장으로서 시급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요즘 정부의 정책 기조가 물가안정과 친서민, 공정거래여서 기업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 회장은 정부와의 정책조율을 원만하게 이뤄내면서 재계 의견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실행하도록 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됐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허 회장은 경영 능력과 더불어 화합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갖춘 분”이라며 “전경련이 재계의 힘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글=권혁주·한은화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허창수 회장=구인회 LG 창업주에게 경영수업을 받은 고(故)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과는 사촌형제지간. 허준구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의 장인 허만식씨의 6촌 허만정씨의 3남이다. 허만정씨는 아들 허준구씨의 경영수업을 LG에 부탁하면서 사업자금을 내놨다. 허창수 회장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석사를 받았다. 1977년 LG그룹 인사과장으로 입사. 이후 LG화학 부사장, LG전선(현 LS전선) 회장, LG건설(현 GS건설) 회장을 거쳐 2004년 7월 GS그룹이 LG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그룹 회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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