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키오스크’ 한참 놀고 보니 ‘광고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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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멋남 전속모델 이재웅(30)씨가 혜화역에 설치된 키오스크 화면에서 캐주얼 재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SDS 제공]


지하철 4호선 혜화역은 다른 역들과는 달랐다. 양쪽 벽면을 46인치 TV형 스크린 한 개씩이 달린 키오스크 9개가 장식하고 있었다. 키오스크란 공공장소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시스템을 말한다. 그중 한 개의 키오스크 앞에서 이세준(16·서울 염리동)군이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을 이것저것 골라 ‘입혀보고’ 있었다. 실제로 옷을 입는다는 게 아니다. 키오스크 화면 상단에 있는 댄디·베이직·빈티지·수트 등 스타일 버튼을 누른 뒤 그에 해당하는 옷들을 화면에 비친 제 모습에 겹쳐 마치 옷을 실제 입은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자신의 키와 몸집에 맞춰 옷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어 화면은 더 실감이 났다. 평범한 점퍼 차림의 이군은 키오스크 화면 속에서 멋진 수트를 입은 신사가 됐다가 빈티지 스타일의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나에겐 빈티지 스타일이 나은 것 같다”며 화면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이처럼 화면 속에서 여러 벌의 옷을 입어본 커플은 “너무 재미있다. 사람들 없는 밤에 와서 다시 해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주부 이선화씨와 딸 최서진·친구 김지원양이 ‘소망 풍선’ 새해 소원을 입력하고 있다. [박혜민 기자]

 이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것은 남성복 인터넷쇼핑몰 ‘멋남’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혜화역과 강남역 키오스크에서 이 체험형 광고를 시작했다.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을 오래 남기고 싶으면 촬영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 사진을 e-메일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송할 수 있다. e-메일을 확인할 경우 자연스럽게 멋남 사이트로 이동한다. 거기서 원하는 옷의 가격과 비슷한 스타일을 둘러본 뒤 원하는 옷을 구매할 수 있다.

 이 광고판 덕분에 멋남의 매출은 20% 이상 늘어났다. 2개월 동안 혜화역에 있는 이 키오스크에서 옷을 입어본 사람들의 수는 4만여 명. 이 중 10% 정도가 e-메일로 자신의 사진을 보냈고, 이들 중 20%가 실제 구매에 나섰다. 쇼핑몰 방문자 수는 전년 대비 2배로 늘었다. 멋남을 운영하는 부건에프엔씨 강교혁 마케팅팀장은 “재미삼아 옷을 입어보는 중 자연스레 쇼핑몰을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며 “광고라는 느낌이 적어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멋남 광고가 떠 있지 않은 나머지 8개 키오스크도 저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최서진(9)양은 그중 ‘소망 편지’를 적어보내는 키오스크에 ‘2학년이 돼서도 건강하게 운동 열심히 하게 해주세요’라는 글을 입력했다. 원하는 ‘말풍선’ 형태를 클릭하니 그 위에 입력한 글씨가 새겨졌다. 풍선은 화면 속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딸 김지원양, 지원양의 친구인 최양과 함께 대학로 연극을 보러 왔다는 이선화(40·여·서울 중계동)씨는 “지하철역에 이런 게 있을 줄 몰랐다. 새해 소원이 진짜 이뤄질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뉴스 키오스크 앞에 서 있던 김영미(73·여·서울 마포구)씨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거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키오스크를 설치한 것은 삼성SDS다. 2억원을 투자해 혜화역에 자사가 개발한 체험형 광고 솔루션 탑재 키오스크들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신개념 광고 서비스를 시도 중이다. 강남역 인근 도로 양편에 설치된 6m 높이의 22개 대형 키오스크에도 이 솔루션을 탑재했다. 이 회사 디지털미디어서비스추진단의 신수철 책임은 “나이와 성별·지역별 구매 성향을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며 “무작위 설문조사 결과가 아닌 실제 이용 패턴에 근거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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