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뇌성마비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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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재활의학

뇌성마비는 ‘어린 뇌의 이상에 의해 운동 및 자세의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을 말한다.
이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고 감각, 인지, 의사소통, 지각, 행동의 장애와 경련 등이 일어난다. 뇌성마비는 태아 혹은 영아의 뇌에 발생하는 손상에 의하며, 손상은 영구적이기는 하나 자라면서 진행하지는 않는다.

뇌성마비를 진단하려면 자세한 병력 청취와 함께 발달평가, 자세의 이상, 근긴장도 이상, 비정상 운동 패턴, 반사의 이상, 자세 반사 등의 신경발달학적 진찰이 필요하다. 그밖에 뇌 자기공명영상, 뇌 초음파, 유발전위 검사, 뇌파검사, 혈액검사 등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특히 1세 이전의 영 유아에서 뇌성마비를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뇌성마비의 전형적인 운동 패턴이 나타나는 시기까지 진단이 쉽지 않아, 보통 1-2세 사이에 진단된다. 그러나 신경발달평가에 숙련된 전문의들은 생활연령 6개월 이전에도 뇌성마비를 진단 할 수 있으므로 뇌성마비가 의심되는 영유아들은 가능하면 빨리 소아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뇌성마비 어린이들은 지적 장애, 경련, 언어장애, 시각 장애, 청각 장애, 구강 운동 장애, 고관절 탈구와 같은 근골격계 문제 등 다른 여러 장애들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으며 각각의 동반 장애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반 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아래는 조기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이론이다.

“뇌의 가소성 높은 어린 시절에 뇌세포 많이 만들어야”

소아 뇌성마비 어린이에게 재활이란 성인과 달리 발달상 아직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술들을 학습해야 하므로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목을 가누고, 뒤집고, 앉고, 서고, 걷고 뛰는 기본적인 대운동 기능을 생후 2년 이내 학습하게 되는데 실제로 이 시기에 뇌는 폭발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이를 의학적 용어로 ‘뇌의 가소성’이라 말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어릴수록 뇌의 가소성이 높은데, 인간의 뇌는 출생 후에도 계속 발달하며, 특히 ‘신경연접’이라고 하는 뇌세포와 뇌세포의 연결이 점점 증가하여 만 2세 경에는 성인보다 약 두 배로 많아진다. 그 이후에는 신경연접의 수가 오히려 감소하게 되어 일단 많이 만들어놓고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이미 결정된 고유한 유전 정보와 후천적인 환경, 즉 경험과 학습이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장기간 해외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가방을 채울 때를 생각해 보자. 일단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여 여행 가방 옆에 놓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좋아하고 가장 필요한 물건의 순서대로 가방을 채울 것이다. 우리의 뇌에서도 비슷한 기전이 발생하여, 많이 사용하여 꼭 필요한 신경연접은 남겨두고, 불필요한 것들은 제거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성장기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비록 어느 정도 뇌 손상이 있을지라도 조기 재활을 시행하면 남아있는 신경연접의 효율성이 극대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습해야 할 특정 행동을 학습해야”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으로 ‘결정적 시기’에 대해 살펴 보자. 이는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제한된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화되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늑대소년 빅토르’이야기는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 남부에서 출생직후 인간사회에서 격리된 채 깊은 숲 속 늑대 무리 속에서 키워진12세 소년이 발견되었다. 이후 빅토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이 소년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수년 동안 집중적인 언어치료와 특수 교육을 받았지만 결국 인간의 언어를 익히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세계 도처에서 빅토르와 유사한 경우의 어린이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모두는 발견 당시 말을 할 줄 몰랐고, 인간의 감정 표현도 어려웠으며, 그리고 집중적인 교육에도 불구하고 끝내 야성을 버리지 못하고 성장과정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에게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적절한 환경이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는 결정적 시기에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정상적인 발달은 어렵다. 대운동 기능의 습득에도 이러한 결정적 시기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만 4살까지 앉기 동작을 배우지 못한 어린이는 보행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따라서 뇌성마비 어린이의 재활치료는 성인 뇌손상 환자의 재활처럼 잃어버린 기능의 회복이라는 관점보다는 신경발달학적인 관점에서의 운동발달 및 운동습득에 재활치료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조기 치료를 통하여 결정적 시기 동안 좀 더 적절한 치료적 자극과 경험들을 제공하고 축적시킴으로써 뇌발달을 도모하고, 뇌발달에 부정적인 요인을 줄여 최종적으로 좀 더 나은 기능 향상을 이끌어 내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재활의학회 제공>

도움말 주신 분들
: 성인영(서울아산병원), 권정이(삼성서울병원), 권범선(동국대학교 일산병원), 김명옥(인하대학교병원), 김성우(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나동욱(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문정림(가톨릭대 성모병원), 박은숙(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주현(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방문석(서울대학교병원), 임신영(아주대학교병원), 전재용(서울아산병원), 정한영(인하대학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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