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3] 생각이 많을수록 스윙은 꼬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골프에는 이런 저런 저주 이야기가 있다. 마스터스 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파3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선수는 정작 본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파3의 저주,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선수는 엄청난 몰락을 겪게 된다는 클래릿 저그(디 오픈 우승컵)의 저주가 대표적이다.

1960년 시작된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 우승자 중 당해연도에 그린 재킷을 입은 선수는 한 명도 없다. 98년 마크 오메라는 신청이 마감돼 파3 콘테스트에 못 나갔는데 본 대회에서 우승했고, 87년 파3 콘테스트 우승자 벤 크렌쇼는 본 대회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 1타 차로 역전패하면서 징크스가 저주로 발전했다. 이듬해 크렌쇼가 파3 콘테스트에서 선두로 나서자 그의 아버지는 “볼을 물에 쳐 넣어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믿을지 몰라도 선수들은 파3의 저주를 믿지 않는다. 마스터스 출전 선수가 100명 정도이기 때문에 파3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선수가 본 대회에서 우승할 산술적 확률은 1% 정도다. 50년 동안 파3 콘테스트 우승자가 그린 재킷을 입지 못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승을 노리는 진지한 선수들은 본 대회에 집중하려 파3 콘테스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아예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스터스에 처음 나온 풋내기 선수나 우승 가능성이 거의 없는 노장들이 이 이벤트의 주인공이다.

클래릿이 외견상으로 피처럼 보이는 와인(보르도산 레드와인)이어서 클래릿 저그의 저주 이론도 그럴싸해 보이기는 한다. 이언 베이커 핀치나 데이비드 듀발, 토드 해밀턴 등이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후 몰락의 길을 걸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주 이론으로는 불운의 대명사 그레그 노먼이 디 오픈에서 2회 우승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섯 차례씩 우승한 톰 왓슨과 세베 바예스트로스는 저주를 이기려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스윙을 했을까.

한번 반짝하고 사라진 선수는 허다하다. 디 오픈의 전통이 워낙 깊어 그런 예가 조금 더 많은 것뿐이다. 오히려 장 방드 발드나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 아깝게 브리티시 오픈 우승을 놓친 선수들의 몰락이 더 커 보인다.

골프의 저주 중 설득력이 있는 것도 있다. 레슨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일수록 스윙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른바 ‘레슨서의 저주’다. 탐독한 레슨서의 수와 스윙 실력이 정확히 반비례하지는 않겠지만 유달리 레슨 책을 많이 보는 아마추어 골퍼의 스윙이 형편 없는 예가 종종 보인다.

이 저주는 요즘 말로 ‘엄친아’ 출신이 주로 걸린다. 법조인이나 의사·과학자처럼 똑똑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운동신경까지 좋은 축복받은 사람들이 저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어릴 적 동네 야구에서 4번 타자 겸 투수를 도맡았던 골퍼들은 “움직이지 않는 공을 치는 골프는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쉽게 달려든다. 당연히 잘 안 된다. 골프 스윙은 인간의 본능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벤 호건은 “몸이 움직이고 싶은 충동과 정반대로 해야 완벽한 스윙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들은 레슨 프로의 말도 건성으로 듣는다. 데이비드 레드베터 같은 세계 최고라면 몰라도 동네 레슨 프로의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아예 “책 보고 독학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학창 시절 두꺼운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던 그들이 아닌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레슨 책을 많이 보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골프 스윙 이론은 수학처럼 명쾌하지 않다. 책마다 이론이 다르다. 결론은 같다 하더라도 설명하는 방법이 다르다. 스윙 한 번 하면서 이 이론, 저 이론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레슨서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을 믿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