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화학 강국 한국으로 가자” … 솔베이 독일 본부 옮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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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지식경제부 차관은 9일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우수 외국인투자기업 10개사 대표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외국기업의 애로사항을 점검했다. 왼쪽부터 안드레노 톰브 솔베이코리아 사장(벨기에), 이노우에 시게쿠니 아사히글라스 사장(일본), 모진 다논 사장(프랑스), 존 워커 맥쿼리 회장(호주), 양창원 다우케미컬 사장(미국), 최승훈 버자야제주리조트 이사(말레이시아), 기성욱 글락소스미스클라인부사장(영국), 안현호 차관, 안충영 KOTRA 외국인투자옴부즈만, 박재길 셀가드코리아 사장(미국). [지식경제부 제공]


벨기에에 본사를 둔 화학업체 솔베이는 최근 독일에 있는 특수화학본부를 한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세정제나 자동차 냉매용 불소계 화학물을 만드는 이 본부의 주요 고객이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한국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1988년 처음 한국에 진출한 솔베이코리아는 사실상 한국의 전자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처음 울산시 온산공단에 세웠던 브라운관 TV용 전자파 차단제 생산공장은 2007년 4500만 달러(약 500억원)를 들여 반도체용 불소계 화학물 생산공장으로 전환했다. 2008년엔 국내 기업과 손잡고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용 특수안료를 생산하는 회사를 따로 세우기도 했다.

솔베이코리아 강두일 상무는 “반도체·자동차산업의 중심이 아시아로 바뀌고 있어 관련 화학제품 생산공장도 한국으로 옮겨 오기로 했다”며 “한국의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는 한 솔베이의 한국 투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면 외국인 투자는 저절로 따라온다. 9일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 실적을 발표하며 “국내에 기업과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형 투자’가 크게 늘었다”며 “국내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산업 경쟁력을 보고 들어오는 투자자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액은 130억7100만 달러(약 14조5000억원). 이 중 86%(약 12조4600억원) 정도가 국내에 부지를 사들여 회사 또는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형 투자였다. 2009년만 해도 그린필드형 투자 비중은 70.6%에 불과했지만 1년 사이 15%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제조업체들의 수출이 약진하고 있는 게 외국 기업의 투자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지경부 천영길 투자유치과장은 “우리 제조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고 핵심소재 분야의 업체들이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며 “반면 내수 시장 경기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서비스업 투자는 다소 감소했다”고 말했다.



 올 5월 충남 천안에 제3공장을 여는 에드워드코리아가 대표적인 경우다. 반도체 생산용 진공펌프를 만드는 이 회사는 영국 본사의 생산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천안으로 옮겨 온다. 영국에는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만 남는다.

3570만 달러(약 39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는 이유는 한국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때문이다. 에드워드코리아 이기돈 상무는 “한국이 반도체 종주국으로 부상하며 생산시설을 옮기게 된 것”이라며 “한국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고 본다”고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에서 한국 제조업체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보인 것도 외국인직접투자에 활기를 더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는 2004년 이후 LCD 패널용 유리기판 생산공장을 국내에 다섯 곳이나 세웠다. 4개의 한국 법인은 한국 진출 5년 만에 1조144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의 수출이 약진하며 납품 실적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의 김재준 이사는 “일본·대만의 전자업체들도 디스플레이 시장의 강자지만 한국만큼 크고 강한 고객사는 없다”며 “2014년까지 단계별로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투자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여럿 지적된다. 안현호 지경부 제1차관은 이날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우수 외국인투자기업 10곳의 대표와 함께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각 기업 대표들은 정부에 파격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제주도 예래지구에 리조트를 짓고 있는 버자야제주리조트(말레이시아계)의 최승훈 이사는 “건물을 짓는 데 들여오는 대리석에 관세가 너무 많이 붙는다”며 “제조업만 자본재 수입에 관세를 낮춰 줄 게 아니라 서비스업에 대한 배려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의 이노우에 시게쿠니 사장은 “7월부터 복수노조제가 실시되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호주계 금융회사 맥쿼리의 존 워커 회장은 “연평도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 본사 등 외국 자본은 필요 이상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해야 더 많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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