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의 진화 … 실속형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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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연희동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유모(36)씨는 최근 중국인 게스트를 모집하면서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하루 최소 한 시간 반 이상은 아이와 중국어로 말하며 놀아줄 것’ ‘집주인이 바쁠 땐 학교에서 아이를 데려올 것’ ‘방학 두 달 중 한 달은 한국에 있을 것’ 등이다. 대신 숙박비는 무료다. 유씨의 엄격한 조건에도 이미 여러 명의 중국인 지원자들이 면접을 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장레이청(張雷成·장뢰성)씨는 “집주인이 제시하는 조건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지금 사는 집의 월세가 자꾸 올라 지원했다”고 말했다.

 ‘문화교류’란 취지로 시작한 홈스테이가 ‘실속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인 호스트는 자녀의 언어학습을 강조하고, 외국인 게스트는 무료 또는 비교적 낮은 집세를 보고 홈스테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국내 외국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한국인 호스트들이 올려 놓은 ‘미국 본토 발음 구사’ ‘석사학위 소지자’ 등의 홈스테이 광고가 계속 올라온다. 외국인들의 호응도 뜨겁다. 이 때문에 평창동의 방 6개짜리 한옥에서 홈스테이 사업을 하는 안모씨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국인들이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무료 홈스테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다. 안씨는 하루에 1인당 5만원씩을 받는다. 안씨는 “외국인들이 점점 ‘실속파’가 되면서 무료 홈스테이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홈스테이는 이처럼 무료와 유료가 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은 무료 홈스테이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성산동에 사는 김모(34)씨는 지난달 인터넷에 같이 살 외국인 친구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방 상태와 월세도 함께 적었다. 하지만 며칠 후 김씨를 찾아온 캐나다인은 “내가 원어민 영어강사이니 무료로 하자”고 제안했다. 김씨는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홈스테이가 장기화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원래 홈스테이는 1~2개월 정도의 단기간이 통상적이다. 대학생 이모씨는 “부모님이 중국지사로 발령을 받으셔서 국내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과 우리 집에서 최소 6개월간 같이 살기로 했다”며 “유학생이라 월세를 아끼고 싶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영어·중국어 등 주요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겐 홈스테이가 그림의 떡이다. 수호오치르 재한몽골유학생협회장은 “영어와 중국어권 학생이 아니면 무료 홈스테이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한국 정부에서 유학생들을 위해서도 저렴하고 편리한 주거공간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산하 서울관광마케팅의 박은선씨는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가정들이 언어학습만을 위해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며 “서울시는 2009년부터 홈스테이 인증 사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신후 기자

◆홈스테이(homestay)=외국인이 특정 국가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현지 가정에 묵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부족한 숙박시설을 대체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자발적인 홈스테이 이외에 전국 8개 지방자치단체와 2개 민간업체가 자체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4000여 명의 외국인을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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