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철모에 담아 손으로 뿌렸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68년 6월초.강원도 양구군동면팔랑리 중동부전선 해안 펀치볼 지역. 
 
국군 21사단66연대1대대3중대 소속 강평원(姜平遠·52·당시 18세·경남김해시구산동)하사는 흑인 미군사병이 지프차에 싣고 온 드럼통 하나를 내렸다.
 
姜하사 등 분대장들은 이 드럼통에 담긴 액체를 매일 양동이나 휘발유통에 담아 부대원들의 작업장소로 옮겼다.
 
부대원들은 철책선 앞 시야가 잘 보이도록 하기위해 초소 앞의 나무와 풀을 50m 너비로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姜하사는 8명의 분대원들과 드럼통의 액체와 경유를 4대6의 비율로 섞어 나무를 베어낸 밑둥치와 잡초밭 주변에 물뿌리개·분무기 등으로 뿌렸다.
 
이 액체를 뿌리자마자 풀잎은 더욱 짙은 녹색으로 변했으며 며칠뒤에는 말라죽었다.

귀찮은 풀베기 작업에서 해방된다며 사병들은 즐거워할뿐이었다. 
 
이 액체가 무서운 고엽제인줄은 아무도 몰랐고 뿌리는동안 사병들은 방독면·장갑 등을 착용하지않았다.
 
대부분의 사병들은 헝겊으로 만든 '통일화’라는 신발을 신고 작업을 해야했다.풀밭에 뿌린 액체가 신발안에 흥건하게 고일 정도였다.

분무기를 멘 사병들의 등에는 액체가 온 몸을 타고 내렸다.
 
일부 사병들은 철모에 액체를 담아뿌리기도 했다.작업후에는 물이 귀해 잘 씻지않고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원액이 몸에 묻은 사병들은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땀띠로 알고 지나쳤다.
 
姜씨의 중대는 이 작업을 두달 정도만 벌였지만 '시계(視界)불량처 제거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중동부전선에서는 이듬해 7월까지 계속됐다.
 
액체를 뿌린 곳은 그가 제대할 때까지 나무 풀이 자라지 않았고 뛰어 놀던 노루·멧돼지·새 등이 자취를 감췄다. 
 
姜씨가 이 액체의 정체를 알게된 것은 월남전에 고엽제가 사용됐다는 소식을 듣고부터다.
 
姜씨는 제대후 지금까지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고 기관지 확장증·심장병등으로 고생하고있지만 "작업 감독자였기때문에 심하지 않은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사관 학교 동기인 金모(55·전남완도 거주)씨가 반신불수 상태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후유증을 앓고있는 전우들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지관이라는 회사를 경영하는 그는 지난 6월3년동안의 군생활을 기록한 '애기하사 꼬마하사'란 책을 펴내면서 고엽제 살포사실을 공개하기도했다.
 
姜씨는 "그해 초 김신조 일당의 서울 잠입과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이 터지면서 전방경계 강화를 위해 고엽제가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대구시서구비산2동에 사는 姜모(54·무직)씨도 같은 피해자.

그는 18일 "강원도양구군 모부대 화기소대 분대장으로 근무하던 68년7월쯤 미 군사고문관의 지시에 따라 이틀에 걸쳐 풀 없애는 약 살포작업을 한 뒤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姜씨는 "당시 부대 동료 4명과 함께 철모에 노란 약물을 받아 맨손으로 비무장지대 곳곳에 뿌렸다"고 말했다.
 
姜씨는 "제대후 현재까지등·허벅지 등에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3명의 딸이 모두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있다"고 주장했다.

김해=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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