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社..인터넷 사업하기엔 너무 ‘뚱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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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스티브 발머 사장은 75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급여제도를 대폭 바꿨다. 이른바 스톡옵션 등 성과에 따라 개인이 받는 보수도 높아지는 성과급 보수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급여를 대폭 늘린 게 핵심이었다.

가령 미국 본사 기준으로 따지면 1인당 기준 급여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15~16%가 늘었다. 보통 6~7년만 근무하면 스톡옵션으로 받는 주식 가치만도 무려 2백만~3백만 달러인 MS로서는 대단한 급여제도 개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MS를 유지해오던 유능한 인재들이 속속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붙잡으려면 더 많은 유인책을 써야 한다고 판단한 MS는 인재 유출 방지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1월5일, 미 연방법원은 MS의 미래에 일대 타격을 주는 판결을 내렸다. MS가 개인용컴퓨터 운용체제(OS)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MS가 이러한 독점력을 남용, 다른 경쟁자와 소비자들의 이익을 해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정한 것이다.

물론 이번 판정은 MS가 반독점법(Anti-Trust Law)에 저촉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판결문안도 판결(ruling)이 아닌 판정(finding of fact)이었다.

게다가 이번 판정은 MS의 허볼드 부사장의 말처럼 “이번 판정은 야구경기로 치면 9회 중 3회에 불과”한 1단계 과정이며 앞으로도 MS가 반독점법의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2단계 및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 및 제재 결정 등의 3단계 과정이 남아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판정 직후 미국의 권위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1면 머릿기사로 ‘MS:제국은 좌초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을 정도로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MS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자칫하면 그룹 해체 등 “핵무기에 맞먹는 극단적인 조치도 감수해야”(조엘 클라인 미 법무부 반독점국장) 할지도 모른다.

인재 유출이 내우(內憂)라면 미 정부와의 반독점법 소송에서 일단 진 것은 외환(外患)이다. 그러나 지난 75년 4월 설립된 이래 올해 기업가치(주가 기준)가 무려 4천7백20억 달러로 미국 최대의 기업이 되기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욱일승천(旭日昇天)해온 MS가 처음 겪는 시련들이라는 점은 같다. 첨단 산업은 인재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인재의 유출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스탠더드석유와 AT&T 등 당시 미국을 좌지우지하던 초대형 기업들이 반독점법에 저촉됐다고 하여 스탠더드 오일은 34개(11년 판결), AT&T는 8개(82년 선고)의 회사로 쪼개졌다는 전례를 봐서 MS는 이번 판결을 가볍게 넘길 수도 없다. 하나같이 모두 MS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들이다.

인재 유출

L.카-. 현재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맨디콤 사장이다. 지난 98년 10월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MS의 전략투자부문 책임자였다. 무료 전자메일회사인 핫메일(hotmail)의 인수를 총괄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MS에 사표를 던졌다. 인터넷에서 벤처기업 창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반면 MS는 대기업화되고 관료화되면서 개인의 자유는 점차 없어져 갔다. 인터넷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봤다.

카 사장만 MS를 그만둔 것이 아니다. 빌게이츠 회장을 뒷받침해 왔던 유능한 간부들과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수 년 전부터 속속 그만두고 있다. MSN(마이크로소프트 네트워크)의 중심 엔지니어였던 딘 캐브너는 96년 열람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퇴사, 웹 3000이란 회사를 차렸다.

지난해 7월엔 쌍방향 미디어 부문 부사장이었던 피터 뉴바트도 퇴사, 온라인 의약품 판매업체의 사장으로 옮겼다. 올해는 선임 부사장급인 브래드 실버버그가 지난 10월 퇴사하고 벤처 투자가로 나서는 등 모두 5명이 사표를 쓰거나 장기 휴직 중이다.

MS는 아직 “인재가 유출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60년대 반도체 거대기업이었던 페어차일드에 근무하던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줄줄이 퇴사하면서 인텔 등 당시는 신흥이었던 기업들을 일으켜 세워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의 주역이 됐고 대신 페어차일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급여제도를 대폭 개혁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분사 등을 통해 임직원들을 유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독점 소송 패배

미국은 사실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라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독점은 경제적 자유와 평등을 해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만 해도 정부와 기업이 서로 협조해 거대기업을 육성해 왔지만 미국은 정부가 나서 기업을 도와준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전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셔먼법이나 클레이튼법과 같은 강력한 반독점법을 제정해 스탠더드 오일과 AT&T 등 당대의 초대형기업들을 강제로 분할했을 정도다.

미 연방법원이 원고인 미 법무부의 손을 들어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아직 최종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확인이 된 이번 판결을 보면 내년 2월께 나올 최종 판결도 MS측에 불리한 내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판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MS가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OS)시장에서 95% 이상 점유율을 갖고 있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런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MS가 그 힘을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는 쪽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웹브라우저로 넷스케이프가 시장을 선점하자 MS는 자신들의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강제로 끼워 판매하거나 윈도체제를 채택한 컴퓨터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넷스케이프 등 경쟁사의 인터넷 검색프로그램 등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제약했다. 또 윈도에 대한 대체상품이 명확하지 않아 MS는 경쟁자의 가격책정에 관계없이 가격을 책정했다는 점 등이었다.

따라서 일각에선 MS가 몇 개의 조그만 회사들로 해체될 가능성이 짙다고 한다. MS가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 기반이 윈도를 제작한 기술적 내용(컴퓨터 코드 또는 소스코드)이므로 이를 공개해 경쟁사와 공유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타임은 아예 이 둘을 포함, 4가지의 시나리오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MS의 위력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업체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우리나라도 나쁠 게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3월 서울 용산전자상가 PC조립상들이 윈도98의 가격을 낮춰달라며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MS의 독점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던 차다.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성장 계기가 될 수도 있다. MS 혼자만 이번 판결에 불만이다. 그러나 MS의 대응도 만만찮다. 독점적 지위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의 결과이며 이로 인해 소비자는 큰 혜택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MS에 적대적인 컴퓨터업계의 치열한 로비 산물이 이번 판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윈도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리눅스가 대안이라고 자주 얘기되지만 윈도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MS의 저력과 빌 게이츠 회장의 탁월한 수완을 들어 MS가 시련을 빨리 극복하고 재기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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