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한국 민주화 과정 안다면 선택은 자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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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는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유혈 사태로 막을 내릴까.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의 결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최선의 선택은 ‘한국’ 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자와 민주주의 양쪽 모두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몇 십 년간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은 독재정부가 있었다. 1987년 봄 한국 군사정부는 정권을 연장하려 했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그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 뒤섞여 일촉즉발의 상황을 몰고 왔다.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과 똑같다. 이집트인들은 지난달 튀니지의 독재 청산과정에 자극받아 민주화 운동을 본격화했다. 87년 한국인들은 한 해 전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피플 파워’에 의해 축출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카이로의 모습은 24년 전 서울 시내의 모습과 같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그랬듯이, 한국에선 기독교인들이 민주화에 앞장섰다. 몇 주간 이어진 무력 충돌과 최루탄 세례 후에 한국인들은 6·29선언을 맞게 된다. 군사 정권은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80년에는 한국 군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무력 진압해 사망·실종자가 200명이 넘었다. 군부는 왜 80년과 87년에 서로 다른 선택을 했을까.
소요사태에 직면한 독재자들은 유혈 진압과 민주화 수용의 두 가지 안을 놓고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하게 된다. 80년 한국의 쿠데타 세력은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도 큰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입증하듯 전두환 대통령은 진압작전이 성공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첫 번째 국빈으로 백악관을 방문한다. 이듬해 서울은 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대신 상을 받았다.
89년 6월 중국 정부도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2주간의 계엄기간이 끝난 뒤 중국 지도부는 천안문광장에 모인 시위대에 발포해도 정치적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실제로 천안문 사태 이후 3년간 중국은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87년 한국 상황은 달랐다. 80년에 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미 레이건 행정부 역시 전두환 정권에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당시 군부는 유혈 진압을 검토했으나 88년 서울 올림픽이 취소될까봐 두려워 실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이집트 민주화 운동에서 어떤 압력도 가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대(對)이집트 지원은 13억 달러나 되고 대부분이 군사적 지원이다. 또 미국은 이집트의 제1대 교역국이다.
지난달 28일 오바마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이집트 경제 원조가 이집트 정부의 행동과 연계될 수 있다”고 희미하게 암시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집트 군부가 무고한 시민에게 발포하는 즉시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고 제재에 들어가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제2 원조수혜국인 이집트에 개입할 수 없다면, 미국 자신의 비용-편익 분석부터 다시 해야 한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한국의 예를 자세히 검토했다면 민주화 수용 카드를 집어들 것이다. 87년 12월 한국에서는 예정대로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야권이 분열했고 전두환 대통령의 육사 동기생이자 후계자인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군부 후보가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 온 야권을 누르고 당선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뒤 김영삼 정부가 탄생했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갔지만 현재 두 사람은 정계 원로로서 잘살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전환 과정은 보수적이고 점진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국회 의사당에서 의원들은 아직도 멱살잡이와 주먹질을 일삼고 있지만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다. 무바라크는 한국의 예를 참고해야 한다.

피터 M 벡 미국 동서문화센터 포스코 펠로 beckpeter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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