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위대한 대통령 알려주고 싶어서 … ” 60~70대 노인들 손자 손 잡고 추모의 발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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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06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타고 다니던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레이건 기념도서관에 전시돼 있다. 아래 사진은 레이건 대통령의 흉상. 장열 기자

1981년 3월 30일 낮 워싱턴DC 힐튼호텔 앞. 연설을 마치고 나오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향해 리볼버 권총이 불을 뿜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20대 청년 존 힝클리의 소행이었다. 여섯 발의 총탄 가운데 리무진 유리창에 맞고 굴절된 파편이 대통령의 가슴에 박혔다. 인근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으로 후송된 대통령은 피를 쏟는 위급상황에서도 타고난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의료진을 붙잡고 농담했다. “나는 당신이 공화당원이길 바라오.”

레이건 탄생 100년, 기념 도서관 가보니

제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살아 있다면 6일이 100번째 생일이 되는 레이건의 리더십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위대한 소통가’로서 좌우를 껴안고 냉전시대에 강력한 미국을 건설한 레이건의 업적과 리더십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이다. 미국인, 특히 보수주의자들에겐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도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를 방문할 때 레이건도서관을 여정에 넣어 보수주의의 근간과 철학을 확인한다. 지난해 중간선거를 앞두고선 공화당의 책사 칼 로브가 이곳에서 선거모금 활동을 했다. 7일에는 공화당 전성기를 이끌었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 500여 명의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와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하지만 최근의 레이건 추모열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연말 휴가 때 레이건의 전기를 읽었다.

지난 1일 오후 레이건 기념도서관을 찾았다. 입구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망치와 정을 들고 벽면에 MURDOCH이란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새 후원자로 등재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이름이다. 머독에 앞서 코카콜라·제너럴일렉트릭 경영자 등 유명인사 100여 명의 이름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돌조각 경력 68년째인 베테랑 조각가 네이튼 블랙웰(88)은 “단지 밥벌이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레이건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데 내 기술이 쓰여지는 것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벽면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권을 파는 창구 앞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많았다. 레이건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80년대 당시 그들은 30~40대로 미국의 허리 세대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왜 지금 다시 레이건을 만나러 왔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 “미국이 번영하던 시기는 레이건 재임 시절이었다”고 답했다.

그들의 진지한 눈빛에서는 미국의 황금기를 되돌아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미국의 미래 재건에 대한 관심이 읽혀졌다. 그들은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와 레이건이 이끌어간 미국을 전해 주고 있었다. 공화당원이라고 밝힌 메릴린 셜리(82)는 “오늘 이곳에 아들 가족들과 어린 손자들을 함께 데리고 왔다”며 “이들이 역사의 위대한 대통령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의 이미지는 보수적이고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레이건은 부드럽고 온화함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강력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레이건 기념도서관에는 5000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 150만 장의 사진과 수많은 영상 자료가 소장돼 있다. 또 레이건 임기 때의 백악관 집무실이 실물 크기로 고스란히 옮겨져 있고 부인 낸시 여사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실까지 마련돼 있다. 단순한 도서관이기에 앞서 레이건 재임 시절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들이 가득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레이건을 태우고 211차례에 걸쳐 63만 마일을 날았던 에어포스 원 대통령 전용기도 실내에 전시돼 있다. 또 레이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랄 수 있는 냉전 종식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기념관 안에 세워져 있다. 기념관 디렉터 멜라니 살베센은 “20여 년 전의 이 장벽 하나가 레이건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얼마니 위대했는지를 보여준다”며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이 예전과 같은 영향력과 위상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80년대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이 놓여있는 상황은 공통점이 많다. 그때 소련이 있었다면 지금은 중국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높은 실업률과 엄청난 재정적자 등으로 집권당에 불리한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레이건은 현 대통령 오바마와 같이 82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런 가운데 당시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을 경험한 미국인들이 레이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2007년 30만 명이던 기념도서관 관람객 수가 지난해 50만 명으로 증가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미국인들의 발걸음도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 수업의 연장으로 찾아오는 단체 관람도 부쩍 많아졌다는 게 도서관 측의 설명이다.

70대의 은퇴자 얼 두레이아는 이곳에서 2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야말로 미국이 추구해야 할 ‘리더의 롤모델’이라는 신념에서다. 레이건 재임 시절 워싱턴에서 개인 사업을 했던 그는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후유증과 경제 불안정, 국제적으로는 경제적 파워를 앞세운 일본에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어쩌면 경제불황을 겪고 있고 중국이 급부상하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비교했다. 그는 “레이건은 안팎으로 힘을 잃어가던 미국을 다시 강하게 세워가며 이끌어간 리더였다”며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현재의 미국 상황이 미국인들의 가슴에 레이건 전 대통령을 더욱 기억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81년 힝클리의 총탄을 맞고 열흘 만에 일어난 레이건은 재선에 성공한 뒤 89년 퇴임했다. 시미밸리의 기념도서관은 퇴임 후인 91년 문을 열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93세를 일기로 2004년 숨진 레이건의 시신은 그의 뜻에 따라 기념도서관 옆 동산에 안장돼 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영화 배우이던 시절 자주 말을 타고 올라 경치를 감상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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