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조달 'Y2K 암초'

중앙일보

입력

Y2K(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문제로 연말 외화조달 시장이 닫혀 은행.기업들이 연말에 필요한 자금거래를 11월까지 끝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비상이 걸렸다.

외국 금융기관 가운데 미국계는 이 문제 때문에 이미 사실상 대출거래를 중단한 상태이고, 현재 국내 은행과 거래가 많은 유럽.대만계 은행들도 다음달부터는 대출창구를 닫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우사태와 10월의 외채 조기상환 이후 외화 유동성에 압박을 받아온 은행.기업들은 홍콩.런던 등 국제 차입시장에 몰려 높은 금리 등의 부담을 안고 외화조달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16일 금융계에 따르면 주택은행이 1억달러 규모의 대출 또는 채권발행에 나섰으며 산업은행도 일본에서 3억달러 조달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1억달러 차입을 위한 막바지 협상과 함께 5천만달러 추가 차입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외국은행들이 Y2K 문제 때문에 연말을 넘기는 2~3개월 단기자금에 대한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1년물 차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 중에는 SK상사가 싱가포르에서 수출채권을 담보로 한 1억달러 대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대건설도 지난 4일 8천만달러의 채권발행을 마친 데 이어 추가 차입을 위한 시장반응 조사에 나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은행들이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12월이 되면 자금시장이 휴무에 들어가 늦어도 11월말 이전에 서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바쁘다" 고 말했다.

금리조건도 더욱 나빠지고 있다.

SK상사 관계자는 "올 연말을 넘겨야 하는 3개월물의 경우엔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자체가 0.5%포인트 올랐고,가산금리도 대우사태 이후 기업은 0.5~1%포인트, 은행은 0.5%포인트 정도 상승했다" 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금융기관이 Y2K문제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하는 줄 알면서도 지난 10월 은행들이 단기자금으로 외채를 81억달러나 무리하게 갚은 게 화근이었다" 며 "일부 은행.기업들이 막판에 몰려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고 말했다.

한편 국내 금융기관.기업의 채권만기는 아직 신용위험이 가시지 않아 만기 1년 이상의 장기차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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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해외투자가들이 아직 한국에 대한 신용위험 때문에 장기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개별은행에 대한 등급이 올라가야 가산금리도 낮아질 것" 이라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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