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지향의 일본인, 모든 것 공개하는 페이스 북에 거부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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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04면

한때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트워터 권하는 법’이라는 유머가 일본 트위터를 떠돌았던 적이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트위터를 하면 영웅이 될 수 있어”, 중국인에게는 “트위터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된다는, 꽤나 진부한 내용. 하지만 일본 케이스만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 트위터 안 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하고 있어.”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힘 못쓰는 페이스 북

‘주변 분위기를 살펴 대세를 따른다’는 건 일본인들의 사회생활은 물론 문화소비에도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다. 심지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선택에서도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강한데, 남성그룹은 ‘아라시’가, 여성그룹은 ‘AKB48’이 지난해부터 경쟁자 없는 독주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요즘 고민을 던져주는 대상이 하나 나타났으니 바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Facebook)’이다. 전세계 가입자수 6억명을 돌파한 ‘대세 중의 대세’ 페이스북이 유독 일본에서만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달 초 온라인판에서 ‘마크 주커버그, 누구?(Mark Zuckerberg. Who?)’라는 부제를 달아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가 일본에서만은 전혀 유명하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은 인터넷 사용자의 60%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만, 일본 내 페이스북 사용자는 아직 200만 명을 넘지 못해 일본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2%도 되지 않는다. 일본의 토종 네트워크 서비스 믹시(Mixi)가 가입자 2000만 명을 넘어섰고, 트위터 역시 지난해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에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치다.

이 같은 부진의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온라인상에서 실명이나 실물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일본 특유의 인터넷 문화를 꼽았다. 믹시 등의 사이트에서는 대부분이 실명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으로만 활동한다. 트위터에서도 유명인들을 제외하고 자신의 실물사진을 프로필로 올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이 두려워 인터넷 결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물건은 인터넷으로 사고 돈은 가까운 편의점에 내는 ‘편의점 결제’와 같은 특유의 방식이 인기다. 도쿄소재 MMD연구소가 21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9%가 인터넷에서 실명을 밝히기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본인들에게 페이스북은 ‘무서운 신세계’다. 뉴욕타임스 기사 후 일본 미디어들은 ‘도대체 페이스북이 뭐기에’ 식의 뉴스를 앞다퉈 내보냈다. 페이스북에서 실명은 물론 고향, 출신학교, 직장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이용해 친구들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들은 방송 패널들의 반응이 재밌다. “현실에서의 관계도 힘든데, 인터넷에서까지 만나야 되나?” 즉 일본인들에게 인터넷은 현실의 연장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도피공간이다. 가상 캐릭터를 이용한 SNS가 유독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다.

이런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 대세’라는 뉴스가 이어지자 일본인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사진)’가 지난 15일 개봉하면서 페이스북의 지명도도 단숨에 상승, “혹시 페이스북 해요?” 라고 묻는 주변친구들도 부쩍 늘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지난주 설문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사용하고 싶은 SNS’로 페이스북이 1위를 차지했다. 가면을 벗기 싫은 마음과, 대세에 순응해야 하는 조바심이 페이스북을 앞에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모양새다. 어느 쪽이 이길지 궁금해진다.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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