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 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경주 최부잣집은 동학 때도 무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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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이자 부자였던 톨스토이는 평소에 사회봉사를 많이 한 덕분에 러시아 혁명 때도 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그런 부자가 있지요. 수백 년 동안 주위에 좋은 일을 많이 베풀었던 경주의 최부잣집은 동학혁명 당시 농민들이 건드리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이는 ‘반(反)부자 정서’라는 단어가 활개치는 지구상의 유일한 두 개 국가라는 러시아와 한국에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감자탕에 뼈를 추가 주문하기 전에 부모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의 서러움을, 1000원짜리 지폐를 본 적이 없다는 거부촌의 자녀들은 알 수 없습니다. 해진 속옷으로 1년을 버티는 분들의 힘겨움을, 브리오니 명품 정장을 즐겨 입는 벤츠 주인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회 통합’의 물꼬는 빈자에서 출발해 부자가 되고 난 뒤, 과거 자신의 자화상인 빈자들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그러한 부자들만이 틀 수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부자들이 이 땅에도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할 뿐입니다.

 산골의 지게꾼 시절을 지낸 후 기업을 일궈 회장 자리에 오른 어느 부자는 평생 14만원짜리 양복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도 기회가 되는 대로 사회 곳곳에 자신의 온정을 듬뿍 베풀곤 합니다. 그 회장과 둘이서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자신의 접시에 불고기가 두 점 남았는데 ‘싸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필자도 한 점 남은 제 접시의 불고기도 포장해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빌딩의 세입자들이 ‘임차료를 꼬박꼬박 내지 말아야 집주인이 세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결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세입자들 사이에는 남의 집세를 늦게 내는 건 나쁜 일이라고 판단한 학원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빚을 내서 임차료를 밀리지 않고 냈습니다. 빌딩 주인은 다른 세입자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러곤 아주 좋은 조건에 빌딩을 모두 학원으로 사용하게 허락했습니다. 물론 학원장은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를 쌓고 있는데 그만 몹쓸 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왕 죽는 것 좋은 일 하자’고 국립묘지에 가서 성심껏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신기하게 죽을 병이 싹 나았다고 저에게 ‘거짓말 같은 정말’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맨손으로 주류 영업을 하느라 하루에 술자리만 13차를 갔다는 어느 사장은 자신의 직원들이 적금을 타면 회사 돈으로 5% 정도의 보너스를 입금시켜 준다고 저에게 자랑했습니다. 새벽기도를 위해 4시에 집을 나서는 그는 정식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어 배움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는 향토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의 수천 명 졸업생 중에서 자신만이 부자가 된 것 같다는 어느 회장은 빈손으로 매제를 다섯 번 찾아가 조른 끝에 자금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부자 될 싹이 보이면 수천만원씩 지원했더니, 그들보다 자신의 사업이 너무나 잘됐다고 수년 동안 여러 번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빈자와 소통하고, 낮은 곳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이런 부자들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간신문에 나오는 못된 부자들의 이야기가 아침 짜증을 유발하고, 피곤한 몸으로 켰던 TV 저녁뉴스가 나쁜 부자들의 고개 숙인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빈자에서 출발한 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진정한 소통은 우리나라 전체 부자 중에서 90% 정도에 달하는 ‘맨손 부자’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부를 사회로 향하는 순간에 이뤄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행해지는 익명의 좋은 일들. 그래도 우리나라가 살 만한 나라, 좋은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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