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흠집있는 공이 더 멀리 가네” 올록볼록 골프공 탄생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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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수백 년 전 어느 날, 무료한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목동이 지팡이로 때린 돌이 우연히 토끼 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역사가들이 추측하는 골프 발명의 순간이다. 이후 사람들은 막대기로 돌을 쳐 구멍 속에 넣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발명품인 특수 아이언들. 물에 들어간 공을 치는 워터아이언과 벙커에서 쓰는 레이크 아이언.

인간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이 놀이를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스코틀랜드의 화살 제작업자는 물푸레나무로 다양한 길이의 클럽을 발명했다(혹은 발명가로부터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대장장이는 말발굽이나 마차 바퀴 자국 속에 들어간 공을 치기 위해 쇠로 특별 클럽(아이언)을 제작했다. 제화공은 가죽과 깃털로 볼을 제작했다.

17세기 중반 인도네시아에서 온 고무를 골프 볼(거타-퍼차·gutta-percha)로 쓰기 시작한 이후 골프는 대중 스포츠가 됐다. 거타-퍼차는 비가 와도 찢어지지 않고 만들기도 간단해 가격이 저렴한 데다 재활용까지 가능했다. 오래 쓸 수 있는 거타-퍼차는 기괴한 현상을 만들었다. 흠집이 생긴 오래된 볼이 새 공보다 더 멀리, 더 똑바로 날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과학자들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50년 후의 일이다. 그러나 제작업자들은 이 현상을 이용해 좀 더 발전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펀치가 달린 손망치로 새 공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냈다. 현대의 딤플(Dimple)과 비슷한 원리였다. 가죽 공은 잘 찢어졌는데 거타-퍼차는 내구성이 강했기 때문에 아이언이 우드를 대체해 주류 클럽이 됐다. 19세기 말 고무 코어에 고무줄을 묶고 발라타 커버로 덮은 헤스켈 볼이 나오면서 비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오래된 골프 코스들은 이때부터 전장을 늘리고 함정을 다시 파야 했다.

19세기 말 골프 붐과 함께 특허 출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89년까지 단 2개에 불과했던 골프 관련 특허가 1890년대에는 120건으로 늘었다. 19세기 발명품 중에는 헤드 페이스에 구멍이 뚫린 아이언도 있다. 저항을 줄여 캐주얼 워터 등에 들어간 공을 칠 때 쓰는 워터아이언이다. 한국에서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갈퀴형 웨지도 실은 19세기에 나온 발명품이다. 레이크(rake) 아이언으로 부르며 러프나 벙커에서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골프규칙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불법(?) 클럽이다.

21세기의 골프 발명품. 드라이버 헤드를 음료수 용기로 사용하고 있다. 스윙 하면서 밭을 가는 클럽도 나왔다.

19세기 말의 가장 큰 발명은 우드의 헤드 페이스를 볼록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에도 특허를 신청하던 당시 사람들은 이와 관련해서는 특허를 내지 않았다. 20세기 초엔 아이언이나 웨지에 그루브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티펙도 발명됐다. 티가 없을 때는 땅에 흙을 한 줌 놓고 그 위에 공을 올려놓고 티샷을 하던 것이 티펙의 발명으로 골프 공을 손쉽게 올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지니어이던 카스텐 솔하임은 클럽 헤드의 무게를 토와 힐 쪽으로 분산시키면 공이 헤드 중앙에 맞지 않아도 빗나감이 적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런 원리로 만든 퍼터는 ‘핑’소리가 났다. 솔하임은 이 원리로 퍼터는 물론 좀 더 진화된 아이언을 만들어 골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핑은 오래 지나지 않아 메이저 브랜드가 됐다. 1979년 테일러메이드는 나무가 아니라 금속으로 우드의 헤드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곧 드라이버의 혁명적 발전을 가능케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많은 골프 발명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골프채널은 발명가들의 제품을 늘어놓은 뒤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헤드 속에 지로스코프가 달려 있어 올바른 스윙 플레인에서 벗어나면 진동이 울리게 해놓은 드라이버가 나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퍼팅 연습을 할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 클럽 헤드에 괭이를 달아 스윙 연습을 하면서 밭을 가는 제품도 등장했다. 국내에서 만든 거리 측정기 골프 버디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골프의 가장 큰 발명품은 뭘까. 가상 현실을 이용해 온라인상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시뮬레이션 골프(일명 스크린 골프) 아닐까

성호준 기자

골프 상상력 넘치는 한국

한국은 골프에 대한 열정이 가장 뜨거운 나라로 꼽힌다. 발명 의지도 뜨겁다. 특허청에 따르면 골프와 관련해 지난 5년 동안 2432건의 발명품이 출원됐다. 특허로 등록된 것은 1092건이다. 특허청 고재범 사무관은 “골프는 다른 분야에 비해 개인이 그냥 아이디어 차원에서 출원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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