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만원짜리 유종하 전 장관 명화 그림 맡은 미술관 직원이 빼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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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네덜란드 화가 알브레히트 쉔크의‘이웃의 볏짚단’.

“관리대장에 없는 그림이 수장고에 있습니다.” 2005년 9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관리팀장 정모(65)씨는 직원 이모(55)씨에게서 이 같은 보고를 받았다. 수장고는 미술품을 보관하는 특수 저장공간이다. 문제의 그림은 ‘이웃의 볏짚단’, 네덜란드 화가 알브레히트 쉔크(1828~1901)의 1874년 작. 얼마 후 이들은 수장고에 들어가 그림을 빼갔다. 지문인식까지 거쳐야 해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이들을 포함해 네댓 명뿐이었다. 정씨는 그림을 자신의 매제가 운영하는 회사에 걸어놨다가 회사가 부도나자 경기도 하남시의 한 물류보관회사에 월 15만원씩 주고 맡겼다.

 그림의 주인은 유종하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1982년 영국에서 5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4000여만원, 현재 환율로 9000여만원)에 샀다. 유 전 총재의 외교부 장관 재임 시절(96년 11월~98년 3월), 245㎝×145㎝ 크기의 이 그림은 외교부 공관을 장식했다. 퇴임을 앞둔 98년 1월, 유 전 총재는 “훼손된 부분을 보수해 달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 그림을 맡겼다. 최만린 당시 관장의 지시로 미술관 보존과학담당관이 보수를 마치자 유 전 총재는 “대형 작품이라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다”며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해 12월 보존담당관이 퇴직하자 관장 외에는 미술관 내 작품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다. 수리와 보관 과정이 공식 절차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2005년 유 전 총재는 미술관에 연락했다가 “그림이 수장고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2007년에 직접 미술관을 찾아 작품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 9월 유 전 총재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정씨의 아내는 직접 유 전 총재를 찾아 사실을 털어놨고, 유 전 총재는 그날 그림을 찾아갔다. 경찰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정씨와 이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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