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경제성장 8년 만에 최고 … 물가·금리에 발목 잡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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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경제가 8년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 고지를 재탈환했다. 올해에도 5% 안팎의 성장이 기대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성장이 둔화하고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서 체감 경기가 더 썰렁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이 수치와 체감 사이의 변곡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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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6일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6.1% 늘었다고 밝혔다. 2002년(7.2%)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한은은 이 같은 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터키 다음으로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 살림을 불린 1등 공신은 역시 수출 호조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14.1% 늘어나 2004년 이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제조업 생산과 설비투자가 활기를 띤 것은 물론이다. 2009년 감소했던 설비투자는 2000년 이후 최고인 24.5% 증가로 반전됐다.

 교역조건을 반영한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5.8% 늘었다.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지만 GDP 증가율엔 못 미쳤다. 수출여건이 나빠진 탓이다. 한은은 지난해 1인당 GDI가 2만500달러를 기록해 2007년 이후 3년 만에 2만 달러대에 복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영택 한은 국민계정실장은 “2009년 성장률이 0.2%에 머무른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있었지만 한국 경제가 비교적 건실하게 성장했다”며 “금융위기는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했다. 금융위기에 눌려 있던 수출과 투자가 살아나고 내수까지 가세하면서 성장의 삼박자가 균형을 이뤘다는 평가다.

 일단 올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까지 8분기 연속 전기 대비 플러스 성장했다. 한은은 지난해 1분기 2.1%에서 4분기 0.5%로 분기별 성장세가 약해졌지만 올 상반기부터 추세가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2%에서 4.4%로 높였다. 미국의 성장률도 2.3%에서 3.0%로 올려 잡았다. 한은도 최근 세계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을 들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4.5%에서 5% 안팎으로 상향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내 기업의 1분기 실적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증권분석회사인 FN가이드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요 315개 기업의 영업이익이 한 달 전 추정치보다 2.81% 늘어난 23조9194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주춤했던 실적이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강하게 회복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체감 경기는 다르다. 성장의 훈풍을 느끼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물가가 문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가 서민물가 안정에 전방위로 대응하고 있지만 체감물가 여건이 여전히 어려워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렵게 끌어올린 성장률을 물가 상승이 다 깎아먹는 상황을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한은이 조사한 1월 물가수준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2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으로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009년 하반기 이후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도 예고돼 있다. 한은은 최근 “원자재값 상승 등 공급 측면뿐 아니라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생긴 수요 측면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르면 상반기 중 한두 차례 더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대출이 많은 가계와 중소기업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기저효과의 반작용도 정책 결정에 부담이다. 올 성장률 전망치(4%대 후반~5%)는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높아 경제 주체들은 심리적으로 이를 ‘둔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최근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가 상당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가계부채가 늘고 있다”며 “기업 투자여건을 개선하는 등 내수를 살려 체감 경기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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