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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수렴만 4년 … 원점으로 돌아간 리모델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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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일한
조인스랜드 기자

“앞으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습니다.”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관은 25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공동주택 리모델링 간담회에서 “좋은 의견을 달라”는 말을 네댓 번이나 반복했다. 한국주택협회·리모델링협회·리모델링 조합장 등 20여 명의 관계자가 정부 정책을 강하게 성토한 이후다.

 정부는 이날 ‘아파트 리모델링을 할 때 수직증축과 일반분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용역보고서에 대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리모델링 사업에서 일반분양은 절대 불가능하다”던 기존 입장을 더 이상 내세우지 않은 것이다. 층수를 높이고 가구 수를 늘리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허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와 주민 등 리모델링 이해관계자들은 답답해한다. 리모델링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지난 4년간 노력한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에 제공한 (리모델링 관련) 참고자료만 한 트럭은 될 것”이라며 “다시 원점에서 의견을 취합하겠다니 허망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있는데도 정부는 리모델링 제도 개선에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고 섭섭해한다. 국토부의 한 관료는 간담회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리모델링 문제가 정부 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2007년부터 열린 리모델링 공청회와 토론회만 수십 차례는 된다고 한다. 한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담당부서가 없으니 공무원이 바뀌면 원점에서 또다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을 반복했다”며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이번 약속도 지켜질지 모르겠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국내에서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아파트는 390만 가구다. 지은 지 15년이 지나면 가능하기 때문에 1기 신도시 아파트 대부분이 해당된다. 이들 아파트에 사는 주민 상당수가 큰 불편을 겪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차시설이 부족하고 설비가 낡아 녹물이 나오는 곳이 흔하다. 한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훨씬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재건축처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박일한 조인스랜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