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트렌디'의 가벼움…MBC 〈햇빛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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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이 '맛'의 드라마라면 미니시리즈는 '멋'의 드라마다."

방송계에 떠도는 말이다. 미니시리즈는 젊은층의 입맛을 겨냥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미니시리즈 제작진은 트렌디적 요소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시청률 확보의 '안전장치' 쯤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극을 끌고가는 주된 동력은 결코 될 수 없다. 감각적인 영상 등 젊은층의 기호나 유행에 무게중심을 두는게 트렌디 드라마다.

MBC 수목드라마 '햇빛속으로' (16부작)는 이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언뜻 언뜻 보이는 힘있는 연출이 '트렌디' 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5회까지 방영된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인하(차태현 분)와 수빈(김하늘 분)을 중심에 둔 부유층 집안과 연희(김현주 분)와 명하(장혁 분)가 등장하는 산동네 정경이 그것이다. 놀라운 점은 하나의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상이한 접근 방식이다.

우선 산동네와 카바레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들떠있지 않으면서 나름의 색깔을 내뿜고 있다. 가로등이나 그림자로 표현되는 어둠의 이미지도 극 전개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대목이다. 어색하지 않단 얘기다.

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부유한 집안에 대한 접근 방식은 상당히 도식적이다. 도대체 방이 몇 개 인지도 모르는 넓다란 집과 브랜드조차 들어보지 못한 최고급 오디오에 대한 카메라의 클로즈업이 시청자에게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뻔한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현란한 접근이 극 전개에 아무런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빠른 전개는 커녕 오히려 극의 속도감을 추~욱 늘어뜨리는 결과만 안겨준 셈이다.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던 오토바이 질주 장면이 '눈요기 거리' 에 그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화면에 남는 건 '치고 달리는 젊음' 이 아니라 요란한 오토바이의 소음뿐이다.

물론 상품성과 작품성의 경계에 선 드라마의 현실적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트렌디풍에 얽매여 드라마 전체에 '브레이크' 를 거는 것은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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