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슈 진단

구동존이는 통일을 향한 미래 투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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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인해
고려대 교수·차기 국제정치학회 회장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비핵화 목표·남북대화 필수’에 합의했다. 이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 고위급군사회담을 제안하고 한국은 이를 수용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의 진상 파악을 위한 구체적인 의제에 대해 진정성 확인이 필요하다.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대화 창구에 해빙의 기회가 엿보이고 있다. 남북한관계가 우리의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미·중 정상 간의 상호인식과 남북대화는 구조적 역학관계를 보여 왔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주석을 상대로 데탕트 정책으로 다가가 중국을 방문했고, 중국도 적(소련)의 적(미국)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전략에 따라 공동의 적인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해 7월 남북대화가 결실을 거둬 7·4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레이건 대통령이 ‘악(惡)의 제국’(Evil Empire) 소련과의 스타워스(Star Wars)에서 군비경쟁에 불을 붙이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에 백기를 들면서 1991년 소련은 붕괴되고 말았다. 소련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예견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해 말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고, 이듬해에 남북비핵화선언으로 이어졌다.

 2000년 임기 말의 클리턴 대통령은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로서 중국의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주석과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대한 포용을 주장해 김정일 위원장과 최초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조명록 특사의 미국 방문이 이뤄졌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 미·일 동맹을 중시하면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로 규정했다.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부르며, 9·11 사건으로 반테러리스트 캠페인 참여 여부에 따라 ‘적과 친구’를 갈랐다.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했지만 남북한 관계는 정체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패한 부시 대통령은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중국을 이해상관자(interest stakeholder)로 받아들이고 북한과의 관계도 누그러뜨리고자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2007년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10·4 선언에 서명했다. 이와 같이 미·중 관계의 호혜적 분위기는 남북한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다.

 스마트파워를 주창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의 소통의 중요성을 내세워 왔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패한 이후 그는 공화당을 비롯한 상대방과의 타협과 협상을 중시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의 정성과 열정으로 지구적 세력균형을 가늠할 수 있는 변곡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겪으며 북한과 남한은 각각 중국과 미국을 활용하는 전략을 펴왔다. ‘북한-중국 대 남한-미국’의 냉전구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중국의 ‘북한 편들기’라는 시각은 일방적이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대미관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의 치밀한 전략적 관점을 꿰뚫어 이에 대처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미 동맹 강화 일변도가 과연 우리의 국익에 최선인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붉은 카펫을 밟고, 붉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환대를 받으면서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은 붉은색이 상징하는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고 있지 않을까. 중국의 G2 부상과 미국의 파격적 대우에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거침없는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표정을 풀고 농담도 섞어 할 말은 하면서도 소통을 통한 양국 간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일궈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목소리로 북한의 농축우라늄을 우려하고 남북한의 건설적 만남을 촉구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우호적일 때 남북대화가 만개할 수 있었던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결정적인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통일을 향한 우리 미래에 대한 투자다.

안인해 고려대 교수·차기 국제정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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