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남자’ 이광재 정치 생명, 노 정부 때 임명된 박시환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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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오후 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광재(46) 강원도지사의 정치적 운명이 판가름난다. 대법원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기소된 이 지사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하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 선고했던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형이 확정될 경우 이 지사는 정치자금법에 따라 지사실에서 나와야 한다. 반면 대법원이 원심을 깰 때는 상당 기간 지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

 이번 선고의 관전 포인트는 박시환 대법관이 이 지사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법관은 진보 성향 판사들의 연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1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서울지법 부장판사로 대법관 인선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표를 낸 지 2년 만에 대법관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대법관 취임 후에는 국가보안법 사건 등에서 진보 성향의 소수의견을 내왔다. 그런 점에서 박 대법관이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는 이 지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도 있다는 정치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 지사를 5개 혐의로 기소한 상황에서 이 중 일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경우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돼 지사직 유지가 가능해진다. 앞서 항소심은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서 2만 달러를 받았다는 부분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국내에서 5만 달러를 받았다는 부분 등 3개 혐의는 유죄로 본 반면 ▶뉴욕 한인식당에서 2만 달러를 전달받았다는 부분 등 2개 혐의는 무죄로 인정했다. 이 지사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신이 있다면 나의 억울함을 하루빨리 벗겨주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박 대법관의 성향과 이번 선고를 연결 짓는 시각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지사가 돈을 받았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되는 것으로 다른 법리적 해석이 필요 없는 사건”이라며 “특정 정치 성향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3부에 검사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과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신영철 대법관 등이 함께 있다는 점도 반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전원합의체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대법관들의 의견 조율이 원만하게 끝났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지사는 1·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했다. 취임과 함께 직무가 정지된 그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죄가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직무정지 처분의 근거가 된 지방자치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현재 도지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법원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피고인 5명에 대한 선고를 27일에 함께 하기로 했다. 선고 대상은 이 지사와 박 전 회장을 비롯해 서갑원 민주당 의원·박진 한나라당 의원·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다.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의 사건을 담당한 각 재판부는 최근 선고 방향에 대한 협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 박 전 회장이 돈을 건넨 혐의는 유죄로 인정된 반면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무죄 판결이 나옴에 따라 재판부 간 교통 정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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