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아직 못 구하신 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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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일산자이 아파트 분양사무소의 정명기 소장은 최근 임대사업을 위해 10여 채를 한꺼번에 계약할 테니 분양가 인하 등 조건을 좋게 해 달라는 요청을 서너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정 소장은 “거래가 거의 없다가 지난해 11월부터 미분양 아파트가 한 달에 40~50채씩 팔려 나가고 있다”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미분양을 처리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잘 팔리고 있다. 치솟는 전셋값 부담을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남양주시 진접지구, 인천 송도국제업무지구 등 미분양이 많은 아파트 단지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지방 광역시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당장 입주가 급하지 않은 세입자도 미리 분양받아 전세난에 대비하는 모습도 새로운 현상이다.

 당장 입주가 급한 사람들은 준공 후 미분양을 많이 찾는다. 남양주 진접지구는 지난해 상반기 한꺼번에 6000여 가구가 입주하면서 매매가는 물론 전셋값도 폭락했다. 절반 가까이가 준공 후 미분양이어서 침체가 한동안 이어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전세난을 피해 서울 및 수도권 등지에서 몰려온 수요자들로 인해 미분양이 꾸준히 팔려 나갔다. 진접지구에 있는 신안공인 최원규 사장은 “미분양이 잘 팔리면서 지난해 말부터 시세가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 시세는 분양가보다 평균 2000만원 정도씩 높아졌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안성시 공도 벽산블루밍 단지도 최근 미분양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안성공도 벽산블루밍 장인수 분양소장은 “중소형은 모두 팔렸고 공급면적 126㎡형을 찾는 수요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계약과 동시에 전세로 내놓는 임대 사업용 물건도 월 20건 이상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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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주가 아직 한참 남은 미분양 아파트 단지임에도 전세난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곳도 있다. 수원 정자동에 들어서고 있는 SK스카이뷰는 3498가구 중 현재 600여 가구만 남았다. 지난해 9월에는 미분양이 1900여 가구나 됐으나 전세난이 본격화한 10월 이후 1300여 가구나 팔렸다는 게 SK건설의 설명이다. 이 아파트 이종현 분양소장은 “전세난을 겪는 서울·분당 등지의 세입자들이 많이 계약했다”며 “주택시장이 지금은 침체됐지만 1~2년 후엔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도 미분양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 새 아파트 공급 부족으로 인해 집값이 오르는 점이 미분양 판매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시 사상구 엄궁동 롯데캐슬리버(1852가구)는 미분양 판매가 더디다 지난해 6월 입주와 함께 매달 30여 채씩 팔리기 시작해 현재는 거의 계약됐다. 지난해 10월 말 입주가 시작된 대전 봉명동 유성자이의 경우 인근 지역 전셋값 상승세에 힘입어 미분양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아파트 분양을 맡고 있는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이 지역 전세가 품귀를 빚으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입주를 시작한 구미 옥계지구 우미린 아파트도 최근 중소형 아파트 매수자가 늘면서 계약률이 입주 시작 전 60%에서 현재 85%까지 올라섰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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