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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라도 더 팔겠다” … 확 달라진 미국 차 CEO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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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선하
경제부문 기자

“우리 차 사러 왔느냐.”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행사장에서 만난 크라이슬러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59) 최고경영자(CEO)는 대뜸 농담부터 던졌다. 헐렁한 스웨터 차림의 그에게 “그렇다”고 농담으로 응수했더니 갑자기 자세를 반듯하게 고쳤다. 서로 농담인 걸 알고 있지만 어쨌든 ‘잠재 고객’으로 대접해주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포드의 앨런 멀럴리(66) 회장은 한 술 더 떴다. 이 회사의 공식 행사가 끝난 뒤 구름처럼 몰려든 세계 각국의 기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회사의 비전을 설명했다. 잠시 뒤 행사장 통로에서 다시 마주친 그는 먼저 기자에게 다가와 “아까 좋은 질문을 해줘 고맙다”며 “포드는 이제 소비자가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차를 만들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포드·크라이슬러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미국차 빅3로 불린다. 이 회사 CEO들은 당연히 세계 자동차 업계의 거물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열정적으로 회사와 제품을 알리려 노력한 이유는 뭘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시장이 크기 때문은 아니란 점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포드는 4018대, 크라이슬러는 2638대의 차를 팔았다. 미국 내 판매량(포드 196만4059대, 크라이슬러 108만5211대)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미미한 규모다. 이들이 단 한 대라도 더 팔겠다는 ‘세일즈맨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다면 북새통을 이룬 모터쇼 행사장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GM의 댄 애커슨(63) 회장도 두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차종에 기대를 걸고 있느냐는 질문에 “판매만 잘된다면 어느 분야가 잘되든 상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론 철저하게 장사꾼이 되겠다는 얘기다. 2년 전만 해도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던 수렁에 빠졌던 GM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는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이번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미국 빅3가 세계 무대에 복귀했음을 선언하는 신고식이다. 가장 눈여겨볼 것은 돌아온 빅3가 방만 경영에 찌들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겸손과 속도’를 무기로 크라이슬러를 바꿔나가겠다는 마르치오네 CEO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차, 다시 한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김선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