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막아낸 장흥 한우 명성 뒤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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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장흥읍에 있는 토요장터를 찾은 방문객들이 한우 판매장에서 쇠고기를 사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구제역이 창궐하지만 장흥 한우는 믿을 수 있어요. 그 맛에 반해 5년 단골이 됐죠.”

 15일 오후 2시쯤 전남 장흥군 장흥읍내에 있는 토요장터. 정남진한우판매장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임종호(68·전남 보성군 득량면)씨는 “한우고기를 시중보다 30%가량 싼 값에 살 수 있다”며 “승용차로 30여 분 걸리지만 기름값을 제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82.64㎡(25평) 남짓한 가게 안엔 직원 8명이 주문을 받은 뒤 무게를 달고 계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인다. 손님 20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서다. 울산광역시에서 온 권영우(60)씨는 “가족들과 먹기 위해 쇠고기 10만원어치를 샀다. 구제역 청정지역이므로 큰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장흥엔 사람 수(4만3000명)보다 한우 수(5만2000마리)가 더 많다. 경기도 안성(7만4000마리)과 경북 경주(6만5000마리) 등에 이어 전국 지자체 중 다섯 번째다. 주말·휴일이면 토요장터에 설치된 주 무대에서부터 100m가량 이어지는 왕복 2차로(폭 9m) 도로가 발 디딜 틈이 없다. 한우고기 판매점(14곳)과 쇠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당(20곳)이 몰려 있어서다. 하루에 한우 30∼40마리가 팔린다. 김광재 장흥군 홍보담당은 “토요장터가 열리면 전국에서 4000∼5000여 명이 찾는다. 이들 중 90∼95%는 외지인이다”라고 말했다.

 구제역 재앙 속에서도 장흥 한우의 명성은 끄떡없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축산농가·장흥군·시장상인회가 삼위일체 노력으로 소비자에게 ‘믿음’을 심어주어서다.

 구제역 방제만 해도 다르다. 필사적이다. 대덕·회진면에 축산농가가 밀집해 있어 구제역이 발생하면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이 높다. 주요 도로에 방역초소를 19개나 설치했다. 농가에서 매일 오전·오후 두 차례 방역하는 것 외에도 ‘구제역 소독 방제단’이 수·금요일 두 차례 농가를 찾는다.

 군수도 직접 나섰다. 이명흠 장흥군수는 한우농가에 무작위로 전화해 방역은 했는지, 소독약은 어디서 구입했는지, 몇 차례 방역을 했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농가도 초비상이다. 군대보다 더 엄하게 경비를 선다. 장흥군 용산면에서 한우 50마리를 키우는 고재국씨는 “구제역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뚫리면 장흥군의 전체 경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24시간 축사를 지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정환 장흥군 친환경농축산 담당은 “구제역 방제가 곧 전쟁이다. 공무원 1명당 축산농가 5∼7곳을 묶어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회 내 식육협의회도 규약을 만들었다. ▶장흥 한우만 판매 ▶가격 인상·인하 방지 ▶호객행위 금지 등이다. 2005년 7월 문을 연 이후 이 규약을 지켜 고품질의 고기를 싼 가격에 판매하다 보니 자연스레 믿음과 신뢰가 쌓였다. 고재현 식육협의회장은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하고 소비자와 직거래하다 보니 다른 곳보다 싸다”고 말했다.

장흥=유지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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