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쿵제, 허리를 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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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본선 8강전>
○·김지석 7단 ●·쿵제 9단

제6보(57~62)=전보 마지막 수인 백△는 김지석다운 배짱 넘치는 한 수다. ‘참고도’ 흑1로 이으면 그쪽은 다 죽는다. 그러나 백2로 넓히면 바둑판의 왼쪽 일대는 하얗게 눈으로 덮인 모습이다. 흑은 확정가가 75집 언저리인데 이곳 백진은 과연 몇 집이나 될까. 이런 건 계산 불능이다. 흑이 A든 어디든 삭감해 오면 다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그 후의 변화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백진도 무시무시하다는 것. 겁먹을 만하다는 것.

 쿵제 9단은 장고 끝에 57로 갈랐다. 박영훈 9단 등 다른 고수들은 ‘참고도’처럼 잡으면 “아무래도 흑이 좋을 것”이라고 했지만 쿵제는 다가올 아수라의 전투와 끝없이 이어질 변화가 싫었다. 프로는 저마다 ‘체질’이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달리 표현하면 김지석 7단의 대담성에 쿵제가 허리를 숙였다고 말할 수 있다.

 58로 따내 다시 끈적끈적한 패싸움이 재개된다. 백은 패를 이긴다고 해서 바로 사는 것도 아니고 또 패가 남는다. 그걸 알고 쿵제는 59로 터부터 잡아 둔다. 이쪽이 눈사태처럼 커지는 게 아무래도 걸렸던 것이다. 60을 선수하고 62로 따내 백 대마는 비로소 삶의 틀을 잡아 간다. 완생은 아니고 여전히 패지만 자체 팻감이 있어 70%는 살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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