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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샘 환자 52만 명 … 7년새 1.7배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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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기능 질환이 있으면 신진대사 속도가 들쭉날쭉해져서 일상이 힘들어진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장질환도 일으킨다. [중앙포토]

#전문직 여성인 김지영(가명·30·서울 중곡동)씨. 지난해 10월 신체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식사량은 같은데 54㎏에서 3㎏이나 빠졌다.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몸에서 열이 나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는 일이 잦았다. 당시 먹던 보약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1월 받은 건강검진에 포함된 갑상샘 호르몬 검사에서 ‘갑상샘 기능 항진증’으로 진단받았다. 김씨의 신체 변화는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갑상샘 호르몬 수치가 높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이었다.

#서울 합정동 이내과의원. 3년 전보다 갑상샘 기능 환자가 3배 이상 늘었다. 특히 스스로 찾아와 검사를 요청하는 사람이 부쩍 증가했다. 이내과의원 이진호 부원장은 “몇 년 전만 해도 환자들은 갑상샘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며 “갑상샘 질환에 대한 정보가 늘며 갑상샘 기능 검사를 요청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 요청 환자의 30%에서 이상이 발견된다.

여성이 남성의 6배 … 50대가 최다

갑상샘 호르몬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2009년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수만 약 52만 명이다. 2002년에 비해 1.7배 늘었다. 갑상샘암 환자는 제외한 수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2년부터 2009년까지 건강보험 갑상샘 기능 환자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해 지난 14일 발표한 결과다.

 갑상샘은 목 안쪽에 나비넥타이 모양의 호르몬 분비기관이다. 음식을 통해 섭취한 요오드를 이용해 갑상샘 호르몬을 만든다. 분비량이 많으면 ‘갑상샘 기능 항진증’, 적으면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항진증은 7년 전보다 1.4배, 저하증은 2.3배나 늘었다. 성별 환자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최대 6배 많았다. 2009년 갑상샘 기능 저하증 환자 28만8149명 중 86%, 항진증 환자 23만3277명 중 74%가 여성이다. 갑상샘 기능 질환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다. 50대 전후 연령대에는 좌우 대칭으로 점차 줄었다. 단 남성 갑상샘 기능 저하증은 연령이 많을수록 점차 증가했다.

 여성 갑상샘 기능 환자가 많은 것은 갑상샘 기능 질환이 ‘자가면역질환’이기 때문이다. 강남차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 박해린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은 근골격계가 약해서 질병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면역계가 활성화돼 있는 여성에서 5~10배 많다”며 “특히 50대에 면역반응 활성이 제일 높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의 힘 … 숨어 있던 환자 드러나

갑상샘 기능 질환자가 급증한 것은 혈액검사가 일반화되고, 건강검진에 갑상샘 호르몬 검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내분비내과 송영득 교수는 “갑상샘 기능 질환의 원인은 90%가 유전에 따른 자가면역 문제이기 때문에 갑자기 증가하는 병이 아니다”며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혈액검사가 의원급에서도 일반화되고, 건강검진에도 포함되면서 숨어 있던 환자가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최근 쏟아져 나온 갑상샘 질환에 대한 정보도 한몫했다.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이영돈 회장(가천의대길병원 외과 교수)은 “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환자 스스로 검사를 요청하는 사례도 과거보다 많아졌다”고 말했다.

 환자가 증가하며 의원급 의사들의 갑상샘 질환 배우기도 한창이다.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장항석 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 수년 전부터 갑상샘 관련 학회에선 개원 의사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종합병원이 보는 갑상샘 기능 환자는 7년간 2배 늘었다. 하지만 일반병원과 의원급은 3.5~4배로 뛰었다.

자연치유 확률 5%에 그쳐

잠자고 있던 갑상샘 기능 환자를 깨운 것은 득일까 실일까.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영돈 회장은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은 심장에 과부하를 준다”며 “나이가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다가 결국 퍼져서 심부전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갑상샘 기능 저하증도 치료가 늦어지면 마찬가지다. 박해린 교수는 “모든 신진대사가 떨어져 지방분해도 잘 안 된다”며 “결국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이 증가해 동맥경화와 심장혈관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갑상샘 기능 저하증은 월경에 변화를 줘 불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송영득 교수는 “최근에는 치료받는 갑상샘 기능 환자들이 많아져 혼수에 빠져 응급실로 실려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갑상샘 기능 질환은 자연 치유되기도 하지만 숫자는 미미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자연 치유율은 환자의 5% 미만으로 극히 드물다”며 “증상에 맞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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