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동기 회견,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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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대통령실장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인선과 관련한 임태희 대통령실장 인책론이 12일 꼬리를 감췄다. 적어도 청와대 안에선 그랬다. 무엇보다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말과 행동으로 임 실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한나라당이 주도한 임태희 책임론이 이 대통령에게 통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의 사퇴를 지켜보면서도 이 대통령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날 임 실장의 사무실을 찾은 이 대통령은 정 후보자의 기자회견문을 읽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 참석자는 “이 대통령이 (정 후보자를) 무척 아까워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정 후보자의 기자회견문 중 ‘여당이 불문곡직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청문회에 설 기회조차 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며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대목에 특별한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청문회조차 서지 못하게 만든 한나라당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이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 ‘침묵’으로 한나라당에 불만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 후보자의 사퇴회견 내용은 사실 이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들”이라며 “한나라당에서 제기되는 임 실장 책임론이 이 대통령에게 설득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집권 4년차 벽두에 청와대 진용을 흔들 수 없다는 판단도 임 실장을 재신임하게 된 배경이다.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임 실장을 교체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는 데다 “대형선거가 없는 올해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할 수 있는 해”라는 이 대통령의 구상이 헝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이 대통령의 한 참모는 “한나라당에선 인사문제로 임 실장을 흔들지만, 임 실장만큼 잡음 없이 청와대를 잘 이끌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런 기류가 전달돼서인지 한나라당에서도 ‘임 실장 책임론’은 잠잠해졌다. 전날 다양한 경로로 소통한 결과 당·청 모두 이 정도에서 국면을 진정시키기로 공감한 모습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 예정에 없던 구제역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청와대에서 소집했다. 이를 두고 “정 후보자 사퇴 파문을 최소화하고 할 일은 하겠다는 의욕을 보인 것”이란 해석이 참모들 사이에서 나왔다. 회의 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이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직접 브리핑을 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런 회의의 경우 통상 부처에서 브리핑을 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후임 쉽지 않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후임 감사원장 후보자 인선과 관련, “검사장급 이상 법조인은 로펌에 가면 3년에 60억원 정도 벌기 때문에 기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 일도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이 아니면 검증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안대희 대법관을 비롯해 지난번 인선 때 정 후보자와 경합했던 인사들이 여럿 있지만,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후임을 빨리 발표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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