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환자 대형병원 가면 약값 두 배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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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마포구 공덕동 최모(65·여)씨는 동네의원에서 당뇨병 관리가 잘 안 돼 2009년 중반부터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신장·눈 등에 합병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개 병원에 한 번 갈 때마다 두세 개 과에서 진료를 받고 병원 앞 약국에서 약을 탄다. 5일 안과 진료를 받고 약국에서 보름치 약값으로 3만7000원을 냈다. 6일에는 신장내과 방문 후 약국에 9000원을 냈다.

 이르면 7월부터 최씨가 부담해야 할 약값이 두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약값 부담이 이렇게 증가하는 이유는 정부가 큰 병원으로 갈수록 환자가 부담하는 약값 부담을 늘리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네의원·대학병원 할 것 없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값(조제료 포함)의 30%만 환자가 낸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형 대학병원은 지금의 두 배인 60%로 올라갈 것 같다. 종합병원 50%, 중소병원은 40%가 되고 동네의원만 30%로 변함없다. 현재 외래환자의 진료비가 이 같은 구조로 돼 있다. 대형 대학병원은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세브란스· 부산대·전남대·경북대 등 44개 병원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제도개선소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방침에 합의했다. 건정심은 의료계·노동계·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건보 의사결정기구다. 이날 소위원회에서는 몇 가지 안을 논의한 결과 진료비와 같은 방식으로 약값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다수 안으로 채택했다. 복지부는 이달 말 건정심 전체회의에서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확정되면 건강보험법 시행령을 고쳐 7월부터 시행한다. 이번 조치는 외래 환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입원 환자의 약값 부담(20%)은 변화가 없다.

 복지부 이스란 보험급여과장은 “큰 병원 이용 시 약값 인상은 경증이나 만성환자들이 대학병원에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경증 질환은 동네의원이, 암이나 심장병 같은 중병은 대학병원이 맡도록 기능을 정립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복지부 분석에 따르면 대학병원 외래 진료의 26%가 동네의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감기 등 경증 질환이다. 하지만 당뇨합병증이나 수술 후 통원 치료를 받느라 대학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는 환자들의 불만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장기간 대학병원을 이용해온 만성질환자도 마찬가지다. 최씨 가족은 “동네의원에서 치료가 잘 안 돼 큰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무리 외래 환자라고 해도 한꺼번에 부담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런 문제를 포함해 중소병원의 약값 부담률을 40%로 높일지 등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구 연세내과의 이동형 원장은 “대학병원 환자의 약값 부담을 높이면 신규 환자의 진입문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진 몰라도 종전부터 대학병원을 다닌 환자가 동네의원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의료기관 구분=30병상 미만이면 의원, 30~99병상은 (중소) 병원, 100병상 이상은 종합병원이다. 종합병원 중 난이도가 높은 중증환자를 보고 20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갖추면 상급 종합병원이며 대형 대학병원이 대부분이다. 종합병원은 274개, 대형 대학병원은 4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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