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多難興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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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국인이 잘 쓰는 말 중에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있다. 이해가 맞는 일부터 우선 함께 하고, 이견(異見)이 있는 사항에 대해선 제쳐 두었다가 나중에 하자는 이야기다. 시험 볼 때 쉬운 문제부터 먼저 풀고, 어려운 건 나중에 처리하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어려운 일부터 손대는 이도 있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의 장루이민(張瑞敏·장서민) 총재가 그런 경우다. 그의 경영전략 중 하나는 ‘선난후이(先難後易)’다. 그래서 그는 외국 시장을 뚫을 때도 진입이 힘든 일본 등 선진국부터 공략한다. 여기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기대가 깃들어 있다.

 한반도에 평안할 날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내내 북한의 도발이 이어졌고 연말엔 구제역(口蹄疫)까지 발생해 전국이 비상이다. 구제역이 처음 시작된 안동(安東) 주민들은 몹쓸 병을 퍼뜨렸다는 죄책감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한다. 이에 권영세 안동시장은 지난주 ‘다난흥방(多難興邦)’을 주장하고 나섰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나서야 나라를 부흥하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난국 극복을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에서다. 이 말은 17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 진(晋)나라 2대 혜제(惠帝·290~306년) 때 ‘팔왕(八王)의 난(亂)’이 일어나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북방 민족들은 독립해 나라를 세우고 황제는 잇따라 피살됐다. 그러나 당시 좌승상이던 사마예(司馬睿)는 건강(建康·지금의 南京)을 지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적(祖逖)과 유곤(劉琨) 등의 장수들이 사마예에게 제위에 오르기를 권하는 권진표(勸進表)를 올렸다.

 그들은 말하기를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에게 나라를 부흥시키고 공고히 하도록 격려해주며(或多難以固邦國),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정세를 정확하게 보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한다(或殷憂以啓聖明)”고 했다. 여기에서 다난흥방이 나왔다.

 중국인은 국난(國難)을 맞으면 곧잘 이 말을 쓴다.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현장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는 한 중학교를 찾아 칠판에 ‘다난흥방’ 넉 자를 쓰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우리의 구제역 폐해 또한 국난 수준에 가깝다. 다난흥방의 각오를 새로이 다질 때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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