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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파생상품’ 개발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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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철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연일 한파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국내뿐 아니라 지구 곳곳이 기습한파, 폭설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이상기후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기상재해로 인한 연평균 재산 피해액은 2조3000억원으로 1990년대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날씨로 인한 피해를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방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개 재해보험이나 날씨보험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지만 최근 해외에서는 기온·적설량·강우량 등과 같은 기상현상을 거래 대상으로 삼아 거래하는 ‘날씨 파생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적설량 파생상품은 2월 동안 서울지역에 내린 눈의 총량을 대상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2월에 서울지역에 많은 눈이 예상될수록, 그리고 실제로 많은 눈이 올수록 적설량 파생상품의 가격은 높아진다. 따라서 예상되는 눈 피해 규모에 알맞게 적설량 파생상품을 미리 사놓으면, 폭설이 내린 경우에도 파생상품을 높은 가격에 되팔아 눈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기온이나 강우량 관련 파생상품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거래된다.

 다른 파생상품과 마찬가지로 날씨 파생상품 거래도 처음에는 두 거래 당사자들 간의 계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거래 당사자들 간의 거래는 계약기간 동안 어느 한쪽이 파산하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거래 참여자들의 신용도가 매우 중요하게 고려된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나 개인들은 이런 종류의 날씨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다. 이에 착안해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1999년 9월 세계 최초로 기온에 대한 선물·옵션 계약을 상장했다. 선물이나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은 미리 정해진 계약 조건에서 공인된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므로 각 거래자들의 신용도를 걱정할 필요 없이 누구나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에는 이후 서리·적설량·허리케인·강우량에 대한 선물과 옵션계약이 차례로 상장되어 비교적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유럽거래소(EUREX)도 2009년 6월 미국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을 대상으로 선물계약을 상장해 거래하고 있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파생상품은 연관 산업이 많은 기온 선물·옵션 계약이다. 예상치 못한 기온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전기·가스 에너지 관련 회사, 의류와 가전업체, 레저산업, 농업 등의 수익성은 큰 영향을 받는다. 현재 기온 선물·옵션 계약은 미국 24개, 유럽 11개, 캐나다 6개, 호주 3개, 그리고 일본 3개 도시지역을 대상으로 거래되고 있다.

 허리케인 파생상품들은 멕시코만의 미국 연안지역과 미국 대서양 유역에 상륙하는 허리케인들의 풍속과 영향 반경을 수치화해 거래한다. 한국은 에너지산업뿐 아니라 농업·건설업·소매업·서비스업 등 날씨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산업의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52%에 이른다. 이는 미국(42%)보다 높다. 따라서 날씨 민감도가 높은 산업에 종사하는 국내 기업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씨 파생상품의 개발과 상장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날씨 파생상품은 주식·금리·외환 등을 기초로 하는 파생상품과는 달리 거래량은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날씨 파생상품은 기업들에 날씨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박철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