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태풍' 고품격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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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이윤택에겐 그만의 뚜렷한 작품세계와 작업스타일이 있다. 관객들이 '이윤택표' 작품을 신뢰하고 많은 배우들이 그를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연출가'로 꼽는 명성의 바탕도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 "이윤택류가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도 "고품격을 자신한다"는 작품 하나를 들고 나왔다. 서울예술단의 예산 7억원을 들여 이윤택이 각색.연출을 맡은 뮤지컬 '태풍'(Tempest)이 그것. 02-523-0987.

20~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태풍'은 셰익스피어가 16세기말 고향으로 돌아가 세기말의 정서를 담아낸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서울예술단의 밀레니엄 뮤지컬로 선정된 이유이다.

'맥베스', '햄릿', '리어왕' 에 이어 이윤택의 네번째 셰익스피어 도전작인 이 작품이 유독 더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윤택이 과연 뮤지컬(혹은 음악극)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또 '태풍'을 소화해낼까 하는 점 때문이다.

이윤택이 뛰어난 연출가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스태프의 예술인 뮤지컬 장르의 특성상 흔히 '연출가 1인 독재 스타일'로 알려진 이윤택이 뮤지컬에서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연극인들 사이에서 많다. 이들은 지난 98년 악극 '눈물의 여왕'이 관객동원에 실패한 경험을 예로 들고 있다.

이윤택 자신이 "스태프 구조로 이끌어간다"고 내세우는 것도 이런 주위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 무대(신선희)와 의상(이유숙), 조명(최형오), 기술(이종일) 등 각 부분의 스태프들이 모두 이윤택과 호흡이 잘 맞는다는 점이 일단 신뢰를 준다.

'태풍'은 또 첨예한 갈등 등 극적 요소가 없어 셰익스피어 작품치고는 다소 밋밋하고 산만한 작품이다. 그래서 흥행을 염두에 둔 본격적인 공연은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다. 이런 원작의 난해함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사다.

38곡이나 되는 많은 뮤지컬 넘버들은 체코의 작곡가 바르탁과 김대성이 공동 작곡했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녹음)는 이윤택의 말대로 고품격의 음악 수준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윤택은 "근대가 동서양이 충돌과 대립을 한 시기라면 그 이전은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라며 "세기말인 지금은 근대성의 극복이 과제"라고 말했다. 또 "기성세대의 암투와 음모를 젊은이들의 결혼으로 해결하는 이 작품을 통해 젊은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연극계의 세대교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견연기자 신구와 남경주, 이정화, 송용태, 박철호, 유희성 등 뮤지컬 전문배우만으로 이루어진 캐스팅이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어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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