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기본이 무너져 … 독해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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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이미지의 LG전자가 확 달라질 모양이다. 강하고 독하게.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쇼(CES)에 참석한 구본준(60·사진) LG전자 부회장은 7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LG전자에 지금 필요한 건 독한 DNA(유전자)”라고 말했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경영관과 목표를 밝히기는 지난해 10월 최고경영자(CEO)가 된 후 처음이다. 구 부회장은 30여 분에 걸친 간담회 중 “강하게” “독하게”라는 단어를 9번이나 사용했다. LG전자의 기업문화와 임직원들 자세가 변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면서다. 그는 “LG전자의 기업문화가 좀 무르죠?”라며 “뭔가 독하게 만드는 거, 독한 문화를 DNA로 가져야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항공모함의 방향이 돛단배처럼 바뀌지 않는다”며 회사의 체질 개선이 가시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아닌 게 아니라 LG전자의 현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걱정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원래 제조업을 하는 회사의 경쟁력은 연구개발과 생산, 품질에서 나오는 게 상식인데 베이직(기본)이 무너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할 때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특히 스마트폰 분야에서의 아픔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실패를)숨길 것도 없는데, 스마트폰 사업은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동안 경쟁업체들도 새로운 제품을 내기 때문에 틈새시장 아니면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올 1년 정도 고생하면 내년에는 수익성이 나는 좋은 제품이 나올 것 같다”며 “휴대전화는 2∼3년 뒤를 내다보고 강하고 독하게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트윈스 구단주이기도 한 그는 회사 경영을 야구에 빗대 많이 이야기했다. “지난 일요일에도 피칭 70∼80개 하고 왔는데, 회사 정상화를 위한 결정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벤치마킹할 수도 없고, 백마 탄 왕자가 와서 어느 날 결혼하자고 말하는, 이런 거는 없지요.”

 그는 이렇게 진퇴양난의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미리 준비하고 열심히 하면 백마 탄 왕자님이 안 나타나도 DNA를 잘 만들 수 있다”며 “내가 물러났을 때 CEO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근간이 흐트러지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내부 인재 중용에 대한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2~3년간 외부 임원 영입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LG전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LG전자 직원이다. (임원)자리를 외부 인사에게 주면 직원에게 비전을 못 준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LG트윈스에서 2군들이 안 크기에 선수들에게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열심히 하더라”며 야구단 운영 경험을 소개했다. LG전자는 전임 CEO(남용 부회장) 체제에서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해 외국인 임원을 영입, 한때 8명도 있었지만 지난해 말까지 모두 물러났다. 구 부회장은 “좋은 사람이 있다면 영입하겠지만 외국인은 확실히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특히 “제조업은 강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며 “지난 3년간 해 왔던 평균보다는 월등히 (투자를)많이 할 것”이라며 과감한 투자계획을 밝혔다.

라스베이거스=문병주 기자

◆구본준=구본무(66) LG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LG전자·LG화학 등에서 경력을 쌓고 1998년부터 LG반도체(현 하이닉스반도체)·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를 역임했다. 2002년에 25조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액정화면(LCD) 공장 건립에 착수하는 등 선 굵은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2007년부터 지난해 10월 LG전자 최고경영자로 부임하기 전까지 LG상사를 맡아 자원개발을 통해 회사 영업이익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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