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외모 따지는 기업 경쟁력 갉아먹어 결국 손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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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20면

김모(39)씨는 “키가 1m58㎝로 너무 작다고 결혼정보회사가 회원 가입을 거절했다”며 국가인권위에 2009년 12월 진정서(陳情書)를 냈다. 김씨의 회원 가입을 거절한 두 곳의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회사의 경험상 키가 작은 남성 회원을 원하는 여성 회원이 드물어 만남을 주선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당사자가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입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 차별조사과 김은미 과장

진정서를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결혼을 원하는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키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상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고, 개인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근거로 서비스에서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결혼정보회사에 이러한 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얼마 후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회원 가입 시 키를 제한하는 조항을 삭제했다.

이와 같이 키나 몸무게 같은 외모 때문에 고용이나 서비스 이용에서 차별을 받아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한 사례는 총 152건(2002~2010년)이다. 2002년 인권위 출범부터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권위 차별조사과 김은미(47·사진) 과장을 6일 오후 4시 국가인권위원회 12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인권위가 차별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권고’가 전부인데.
“인권위의 주기능은 ‘권고’다. 말 그대로 권하는 것이다.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강제로 시정하게 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권고 결정을 언론에도 알린다. 인권 침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 기업 입장에선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요즘 같은 때는 더 그렇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기업에서 권고사항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지지가 권고를 이행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외모도 경쟁력’이란 말처럼 외모가 중요한 시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외모에 따른 차등 대우를 꼭 차별이라고 봐야 하나.
“물론 사람마다 선호하는 외모가 있다. 개인 수준에서는 외모 선호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외모가 고용·교육과 같은 공적 영역에 적용되면 문제가 된다. 사람의 외모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스펙’ 하고는 다른 개념의 문제다. 인간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차별받고 기회 자체를 제한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외모 차별을 막기 위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정부는 두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공무원을 고용하는 고용주이기도 한 정부는 엄격한 공정성의 잣대를 적용해 민간 기업에 본보기가 돼야 한다. 둘째 임무는 민간의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차별이 만연하면 사회 통합이 힘들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법무부에서 검토 중인 법안 내용에는 논란이 됐던 동성애 관련 조항은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안에 꼭 통과되길 바란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도 외모 차별을 하지 않는 게 결국 이익이라고 들었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기업을 운영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외모에 대한 편견 때문에 키나 몸무게처럼 능력과 관계없는 조건을 부과해 우수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면 결국 그것은 회사의 손해로 이어진다. 외모 차별 철폐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능력주의 문화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거센 요즘 약자를 배려하고 기회의 균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외모로 차별받았다는 진정이 왜 늘고있나.
“그동안 인권위에서는 국민의 인식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캠페인을 벌이거나 인권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해가 지나면서 진정 수가 늘었다.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차별 대우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안다고 해도 진정까지 낼 용기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요즘은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이 예민해진 것 같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용기를 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접수된 진정은 어떻게 처리되나.
“인터넷 홈페이지(www.humanrights.go.kr)·전화(1331)·우편·방문 등 여러 방법으로 진정을 접수할 수 있다. 접수된 진정서는 차별조사과로 넘어온다. 먼저 조사관이 진정인과 피진정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가 끝나면 ‘차별시정위원회(인권위원 3명으로 구성)’가 열려 접수된 사안이 차별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차별로 결정된 진정은 진정인과 피진정인에게 통보하고 동시에 언론에도 알린다. 이후 권고사항을 피진정인이 시정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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