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유럽 위기, 진정한 단일통화 이루는 기회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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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24면

2010년은 두려운 한 해였다. 처음엔 누구도 지난 한 해가 두려운 한 해가 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유로존(유로 사용권)의 주변부인 그리스 재정위기가 불거졌다. 사람들은 그저 그런 위험 요인의 하나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유로 시스템 자체가 난장판이 됐다. 한 해 전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유로존 해체가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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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는 애초 예견된 문제였다. 유로 시스템 개발자들은 통화 가치의 핵심인 재정과 금융의 건전성을 회원국에 맡겨놓았다. 단일 통화에 걸맞지 않은 결정이었다. 개별 국가들은 공동 시장이나 단일 통화 시스템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중시한다. 유로 시스템이 언제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구조였다.

2011년은 어떤 한 해일까. 비관론자들은 도미노 사태를 예상하고 있다. 유로 시스템에는 구심력이 없기 때문에 유로존 회원국들이 하나 둘씩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유로 시스템이 스스로 문제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본다. 201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바람에 상황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논쟁이 공허한 입씨름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끝내 논점을 잃고 말의 성찬으로 바뀌게 된다. 듣다 지친 정책 담당자들은 경제 전문가들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린다.

그러나 그들의 논쟁 속에는 쓸모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유로존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다. 현재 유로 체제에서 재정 문제는 회원국의 주권 가운데 하나다. 반대로 유로존이 구제금융을 조성해 제공하는 일은 회원국 주권을 제약하게 된다. 유로존은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급전을 빌려주면서 재정적자를 언제까지 어떻게 줄일지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이율배반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원국 주권을 어느 정도 제약하더라도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재정 건전성 조약이다. 독일의 균형 재정법이 좋은 본보기다.

둘째는 ‘어떻게 위기에 빠진 나라를 워크아웃(채무구조조정)할까’다. 현재 그리스나 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 등은 자칫하면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질 수 있다. 채권 금융회사들이 알아서 워크아웃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리스나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혼란스럽게 디폴트를 선언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워크아웃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 분담이다. 그리스 등의 워크아웃에 드는 비용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 독일이나 프랑스 국민이 모두 짊어져서는 곤란하다. 채권자들도 고통을 나눠져야 한다. 어떻게 고통을 분담할지 회원국들이 룰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이유다.

셋째는 ‘유로 회원국들의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올 1월 1일 리투아니아가 유로를 채택하면서 회원국은 17개 나라로 늘어났다. 그런데 회원국 경제 체급이 제각각이다. 독일 같은 나라는 경제 체급에 비춰 값싼 유로화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유로화 가치가 독일 경제 체급에 비춰 10% 저평가됐다고 한다. 그만큼 독일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

반대로 그리스나 아일랜드는 경제 체급보다 고평가된 유로화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경제 체급에 비춰 10% 정도 고평가돼 있다. 가뜩이나 경상수지 적자인데 유로화 강세 때문에 수출마저 어렵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로존 회원국은 독일 등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재정위기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넷째는 ‘유럽위원회의 위상을 어떻게 바꿀까’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유럽위원회는 유명 무실해졌다. 유럽연합(EU)의 최고 집행기관인데 위기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이나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다. 개별 회원국들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니 유럽위원회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앞서 말한 세 가지 과제 모두가 유럽위원회 리더십이 없으면 이뤄지기 힘들다.

위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위기는 현재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의 글로벌 회장인 도미니크 바튼은 “위기는 기존 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기회”라며 “기존 구조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힘이나 영향력이 위기 때문에 약해진다”고 말했다.

유로존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돈을 마련해 구제금융으로 쓰고 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지면 기존 구제금융보다 몇 곱절 많은 돈을 조성해야 한다. 그 규모는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도저히 조성할 수 없는 금액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회원국 주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이나 집단은 영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이용하면 개별 회원국의 재정정책 권한을 축소하고 유로존 전체를 아우르는 재정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 현실화할 수 있는 유로사태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못다 이룬 꿈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그 꿈은 1958년 로마조약으로 시작됐으나 이런 저런 반대와 저항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



정리=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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