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앞으로는 고령자 아닌 장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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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에 맞춰 법도 바뀐다. 사람들의 생각과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는 만큼 이를 규율하는 법도 현실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7일 법제처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의 법률에 적시돼 있는 ‘55세 고령자’를 ‘55세 장년’으로 고칠 방침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증여를 약속한 뒤 이를 취소해도 면책되는 민법 조항도 삭제할 계획이다. 인구의 고령화, 남편의 지위 약화 등 사회적 변화상을 반영하기 위해 그러기로 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을 ‘연령차별금지 및 장년 고용촉진법’으로 이름부터 통째로 바꾸는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이 법은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50∼54세를 ‘준고령자’로 규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다수는 ‘55세=고령자’라는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반수 이상이 55세부터를 ‘고령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평균기대수명은 80.5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국인 수명이 80세를 향해 가는데 ‘55세 고령자’는 현실과 맞지 않다”며 “50세 이상은 무조건 ‘장년’으로 표기하기로 했다”고 법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법무부는 민법 828조 ‘혼인 중 부부계약 취소권’을 삭제할 계획이다. ‘부부간 계약은 혼인 중 언제든지 부부 일방이 취소할 수 있다’는 이 조항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남편이 아내에게 재산 증여를 약속한 뒤 이를 취소해도 부부는 남남이 아니라는 특수성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여성계가 구시대적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해 왔고, 남편의 ‘빈말’을 부부이니 봐줄 수 있다는 생각도 희박해졌다”며 “부부간에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게 조항 삭제의 취지”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형법도 고쳐 현행 ‘취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부녀를 매매한 자’인 인신매매죄(228조)에서 ‘취업’을 ‘노동력 착취, 성(性)매매, 성적 착취, 범죄 이용’으로 확대하고, ‘부녀’도 ‘사람’으로 바꾸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적장애인의 노동력 착취 등 새로운 범죄가 발생하고 있고, 성별을 구분할 이유가 많이 사라졌으며, 유엔의 ‘인신매매 의정서’도 ‘부녀’가 아닌 ‘사람’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 만큼 관련 조문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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