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성학집요 <22> 보덕(輔德)-리더가 ‘학습’을 통해 성장하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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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08면

포용력과 비전의 기초 위에 율곡은 리더의 ‘학습’을 주문했다. 그래서 ‘회덕량’ 다음에 ‘보덕(輔德)’장을 세웠다. 열린 학습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좋은 친구와 조력자, 스승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2)권력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비움(無我)’의 겸허, 3)그 ‘가르침’을 통한 성장, 혹은 구체적 자기 변화가 그것이다.

군주가 자존심 접고 귀를 열 때, 위대한 통치가 시작된다

1. 군주를 둘러싼 삼엄한 경고장치
정치의 관건은 군주의 인품과 자질이다(天下之治亂, 繫乎人君之仁與不仁耳). 그리고 그 리더십은 “아직 미성숙이고, 학습과 교정의 대상(人君之心, 惟在所養)”이다.
이 자각하에 옛적 현명한 군주들은 주변에 ‘덕의 조언자’들을 삼엄하게 배치해 두었다고 한다. 가령 “무당(巫)은 귀신의 경고를 일깨우고, 사관(史)은 옛적의 경험을 들려주며, 예언가(卜)는 점괘에 나타난 길흉으로, 눈먼 악사들은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제왕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수레에 올라타면 여분(旅賁)의 칼과 창이, 관청에는 법전이, 지팡이와 목욕탕에는 경고 문구가 새겨져 있고, 침소에는 시종들이 읊는 잠언이 들려왔으며, 일을 처리할 때는 눈먼 사관들의 도(道)가, 그리고 연회에서조차 바른 정치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 이 전통이 사라지면서 정치는 문란해졌다. 이 회고는 퇴계의 『성학십도』 서문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2. 좋은 친구들을 가까이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할까. 주변 ‘환경’부터 정비해야 한다. 내시 환관들, 그리고 궁중의 여인네들과는 거리를 둘 것. 그래야 일상과 측근에 매몰되지 않는다. 율곡은 말한다. “현명한 사대부들과 친하는 시간이 많고, 부시(婦侍) 궁녀들과 만나는 시간이 적어야 자연히 기질(氣質)이 변화되고, 덕기(德器)가 성취됩니다.” 그렇지만 군주 또한 사람인지라 “현명한 자들을 부담스러워한다(賢人易疎, 小人易親).” 하여 군주의 뜻에 맞고 순종적인 부류들이 주변에 번성한다. 그 아부와 친압(親狎)에 취해 군주는 “내가 이미 성군(自聖)!”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역사의 교훈은 미숙한 식견에 앞뒤 없는 결정이 ‘권력’의 이름으로 행사될 때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3. 유학은 독단 아닌 공론의 정치 추구
율곡은 『주역』의 경계를 인용해 놓았다. “과감한 결정, 비록 올바르다 하더라도 위태롭다).” 옛날의 성인은 그렇지 않았으니, “권위에, 통찰력, 그리고 결단력을 갖추더라도, 그리고 사세가 전권을 주더라도, 그는 천하의 의논을 다 거친 다음에 결행했다”는 것.유학은 독단이 아닌 공론(公論)의 정치를 추구했다. 그렇지만 낯선 지식은 군주의 열등감을 유발하며, 자신을 향한 충고와 비판은 더욱 견디기 어렵다. 이 심리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무릇 “약이 눈을 아찔하게 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 법.”이다. 군주가 자존심을 접고 귀를 열 때 위대한 통치가 시작된다. 틀림없다.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나 정치적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이 덕성은 ‘자기를 비워야’ 비로소 열릴 터다. 율곡은『주역』의 함괘(咸卦)를 인용했다. “산 위에 연못이 있다. 교감(咸)의 상이다. 군자는 비움으로써 다른 이를 수용한다(山上有澤, 咸, 君子以虛受人).” 이렇게 ‘귀가 순해지면(耳順)’, 말을 뒤집어 듣게 된다. “어떤 말이 혹 ‘거슬린다면’, 혹 그것이 도(道)일지 모른다고 살피고, 반대로 ‘흡족하다면’ 아차 싶어 그 도 아님(非道)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유교나 불교의 지혜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정자는 자신의 『역전(易傳)』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비운다, 이는 곧 무아(無我)를 말한다.”

4. 허물 있어도 고치지 않는게 진짜 허물
아직 갈 길이 더 남았다. 겸허와 수용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 1)비판과 충고는 자기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2)타인으로부터 배운 새 지식은 과감한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1)공자는 말한다. “허물이 있으면서,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허물이다.” 실수는 용납된다. 죄도 한 번은 괜찮다. “잘못이 너무 멀리 나가지 않고, 결국 돌아오는 것(不遠復), 그리하여 막바지 후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길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고치기보다 ‘변명’이나 ‘덮기’에 급급해한다는 것. 공자의 괄괄한 제자 자로(子路)는 “남들이 자기 잘못을 알려주면 고맙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공자가 인정한 유일한 제자 안연(顔淵)은 “불선(不善)이 있으면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그것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 포인트는 “다시 행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남김 없이 알았다”에 있다. 알려진다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작지 않겠는가. 그래서 간단(間斷) 없는 자기-주시(敬)가 수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의 어법에 의하면 “알고 저지르는 죄가 더 무거우니, 왜냐. 뜨거운 쇠 젓가락을 모르고 쥘 때가 더 많이 델 것이기 때문에….”

2)율곡은 현자들을 ‘장식용으로’ 부르고 그 ‘지혜’를 사장시키는 군주의 태만을 더욱 높이 질타했다. “현자를 등용한다는 이름만 취하고, 그들을 좌우에 두되, 간언이 있어도 따르지 않고, 잘못을 지적당해도 고치지 않는다면, 현자들이 허례(虛禮)에 붙잡혀 자신의 지키는 바 절조를 잃으려 하겠습니까. 기회를 보아 물러나서 고반(考槃), 은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럼, 주변에 남는 사람은 총애받고 아부하는 인물들뿐일 것이니, 이러고도 나라가 위망(危亡)에 빠지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형조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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