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도 최고 될 수 있다” … 양준혁 ‘말 대포’로 부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해 은퇴한 프로야구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이 ‘스타 강사’로 변신했다. 그가 지난 6일 충남 덕산의 한 리조트에서 올해 프로야구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뭐라고 제 소개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전 프리랜서 양준혁입니다.”

 전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42)의 인사말에 고교나 대학 졸업을 앞둔 어린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초반 분위기를 잘 잡은 양준혁은 프로야구 신인선수 100여 명을 상대로 자신있게 강의를 펼쳐냈다.

 양준혁은 지난 6일 충남 덕산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2011년 신인선수 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초청됐다. 1993년 프로야구 신인왕 출신인 그는 18년이나 차이 나는 야구 후배들 앞에서 ‘담대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1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양준혁의 야구인생 2막이 그라운드 밖에서 힘차게 열리고 있었다.

 ◆최고가 된 2인자=“나는 2인자였습니다.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지요.”

 양준혁은 프로 18년 동안 최다 홈런(351개)·타점(1389개)·타수(7328개)·안타(2318개)·득점(1299점)·4사구(1380개) 등 각종 타격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지난해 은퇴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낮추자 어린 후배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요? MVP(최우수선수)나 홈런왕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이승엽(35·오릭스)처럼 한 시즌에 홈런 40~50개씩 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현역 시절 난 2인자였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18시즌 동안 홈런 2위만 세 번 했다. 타율 1위는 네 차례 차지했지만 정규시즌이나 한국시리즈 등에서 최고의 자리인 MVP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양준혁은 매년 20개 안팎의 홈런을 꾸준히 치며 90년대 홈런왕 장종훈(340개)과 2000년대 홈런왕 이승엽(324개)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는 “다른 기록은 몰라도 통산 홈런 기록을 내가 세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1인자만 살아남는 게 아닙니다. 특히 야구는 희생이 필요하죠. 나를 조금 억누르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은퇴할 때엔 최고가 됐죠”라며 어깨를 폈다.

 살벌한 생존 경쟁을 앞둔 신인선수들에게 큰 희망이었다. 이 자리에는 계약금 7억원을 받은 유창식(19·한화)과 함께 계약금이 수천만 원에 머문 선수들도 함께 있었다. 양준혁은 “지명 순위나 계약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똑같은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승엽도 처음엔 투수였지만 타자로 대성했어요”라며 후배들을 다독였다.

 ◆1인자 부럽지 않다=양준혁은 자신보다는 삼성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 이승엽을 앞세웠다. “나는 타율 3할과 20홈런이면 만족했어요. 그런데 이승엽은 50홈런을 넘게 치고도 이듬해 타격폼을 바꾸더라고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야구를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군지 알아요? 이승엽이에요. 그렇게 야구를 잘하고도 하루 못하면 새벽까지 훈련을 했어요. 프로 지명을 받았으니 여러분의 재능은 충분해요. 이승엽만큼 노력해보라 이겁니다.” 자기 자랑이 아닌 이승엽 얘기는 설득력이 높았다. 2인자가 말하는 1인자의 신비감은 더욱 강했다.

 ‘최고가 된 2인자’ 양준혁은 다음 강의를 위해 경기도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요즘 매일 두세 차례씩 대학생이나 기업 임직원을 상대로 ‘위기’와 ‘도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가 말했다. “현역 시절엔 아쉬웠지만 은퇴할 때는 1인자가 부럽지 않았어요. 누구 못잖은 야구인생 2막이 열렸으니까요. 이렇게 불러주시는 분들도 많고, 지금 참 행복합니다.”

덕산=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