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착한 권력은 없다’ 중국 왕 11명에 대한 서늘한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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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권력전쟁
뤄위밍(駱玉明)지음
김영화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271쪽, 1만4000원

‘범도 제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다는 속담은 측천무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딸과 두 아들, 손자까지 죽여버렸다.’

 ‘중국 정사(正史)로 치는 24개 역사서를 다 들춰봐도 시대가 매번 쿠데타로 바뀌고, 그 때마다 시신이 산을 이뤘다.’

 책의 내용처럼 거칠게 표현하자면 중국 역대 왕조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상쟁 장면만 골라 담았다. 유방·이세민 등 ‘권력의 화신’ 11명의 음모와 암투·살육·성공에 관한 보고서다. 생사·성패가 엇갈리는 긴박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이런 무협지가 없을 정도다. 발간 후 20여 년 동안 중화권의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켜온 것이 우연이 아니다.

 권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이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근본적 욕망’이라는 영국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의 지적을 전제로 든다. 물리학에서 만물을 지배하는 것이 에너지라면 사회과학에서는 단연 권력이다. 그래서 ‘권력전쟁’ 앞에서 순진하게 도덕과 정의를 너무 들이대지 말 것을 조언한다.

 ‘야망의 발톱을 내면 깊숙이 숨겨라’ ‘경쟁자를 결코 허용하지 마라’까지는 그렇다 치고 ‘쓸모없다면 과감히 내쳐라’ ‘자신을 성인군자로 포장하라’ ‘권력에는 금기가 없다’ 같은 권모술수가 당연시된다. 중국 고대문학에 정통한 현지 대학교수 저자의 중국판 마키아벨리즘이다. 유방이 천하통일 후 최고 공신인 한신을 잔혹하게 죽이는 ‘토사구팽’이나, 이세민이 형제를 참하고 세상을 쥐는 ‘현무문의 난’을 도덕의 잣대만으로 평하지 말라고 한다. 대신 그들이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되었나, 권력전쟁이 역사의 구도를 어떻게 바꿨나 하는 관점에 서야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이 책은 중국 역사상 흥미로운 권력 암투 장면만 모아놓은 감이 있지만, 등장 인물의 리더십과 처세술·용인술·심리전 등을 곱씹어보고 오늘날 대통령선거 주자의 그것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기대할 수 있겠다.

 책을 덮고 나니 씁쓸한 느낌도 든다. 중국 역사의 권력 잔학사를 너무 관대하게 사면해 준 것 아닌지, 현대 민주주의에 시스템화된 권력을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재단한 건 아닌지 해서다. 하지만 순진한 갑남을녀에게 ‘착한 권력은 없다’는 경종을 울리려는 위악적 제스처로 이해해 줄 수도 있겠다.

홍승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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